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노먼 도이지의 최근작인 이 책 ‘스스로 치유하는 뇌’의 핵심 개념은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뇌가소성)이다. 최근 서구 주요 언론들이 잇따라 다루며 열렬히 주목하고 있는 ‘뇌가소성’은 말 그대로 뇌가 활동하면서 자기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속성으로 선명하게 비유하자면 우리 뇌가 찰흙이나 플라스틱처럼 변형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는 뇌에 대한 기존의 주류 학계의 관점과는 다르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인간의 신체를 기계에 비유해왔다. 뇌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계론적 관점에서 뇌는 일종의 컴퓨터 같은 기관으로 각 부위는 각각 담당하는 기능이 정해져 있다. 기계가 스스로 고치거나 부품을 만들 수 없기에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결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뇌졸중이나 부상 혹은 질병으로 일정한 곳이 망가지면 고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 의견이고 일반인의 통념이다. 그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살펴보면, 뇌는 고도로 전문화된 수백만 개의 회로로 이뤄진 기관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회로에 대체 부위를 공급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뇌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치료란 그저 처방약을 사용해 뇌의 화학적 균형을 바꿔 ‘망가진 체계’를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며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노먼 도이지는 이 같은 ‘변하지 않는 뇌’ 개념을 반박하며 전 세계 여러 학자, 의사, 환자 등을 찾아다니며 ‘신경가소성’을 증명해 낸다. 저자는 이미 2000년, 학습이 일어날 때 신경세포 사이의 관계가 증가한다는 것을 입증한 과학자들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이 돌아가면서 ‘과학적으로 공인’됐다고 말한다. 수상자 중 한 명인 생물학자 에릭 캔들은 신경세포는 최초로 연결된 배선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신경 구조를 바꾸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켤 수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은 뇌의 산물일 뿐 아니라 동시에 뇌의 형태를 만들고 바꾸는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뇌세포는 순간순간 다른 세포와 계속해서 전기적으로 소통해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며 이것이 바로 치유의 원천이라고 했다. 바로 ‘스스로 치유하는 뇌’다.
저자는 통증을 무시하려고 애쓰며 통증을 인지하는 뇌의 신경회로를 점점 약화시킴으로써 통증 없는 삶을 살게 된 통증 전문가, 30대 중반 파킨슨병이 발병했지만 걷기 운동을 통해 신경계 퇴화를 저지한 파킨슨병 환자, 뇌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는 치료를 통해 일상을 회복한 다발성 경화증 환자, 소리로 난독증을 극복한 소년, 명상을 통해 과도하게 자극된 뇌 회로를 되돌리려는 물리학자 겸 물리치료사 등을 직접 만나 그들의 임상 사례를 통해 신경가소성을 증명한다. 빛·소리·진동·움직임 같은 감각으로 뇌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치유한다는 것이다. 난치성 뇌 질환의 자기 치유라는 점에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뇌의 세계에 대한, 결국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흥분시키는, 흥미로운 책이다. 598쪽, 2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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