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화력 좋은 사람도
진정한 인맥은 최대 150명
가족과 같은 관계는 3∼5명
사회적인 친밀한 사이 50명
사회 관계망 확장되더라도
일정한 수 넘기면 피로해져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 인간행동의 진화론적 기원을 탐구해온 그는 이른바 ‘던바의 수’로 유명하다. 사람을 사귀는 재주를 타고난, 인간관계가 넓은 사람도 ‘진정한 인맥’은 최대 150명 정도라는 게 바로 ‘사회적 뇌’의 가설을 제시한 던바의 연구 결과다. 과거 부족사회의 구성원 숫자도, 한 가정이 평균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수도 이 숫자를 넘지 않는단다. ‘인류 대부분은 150명 이상과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이 이론은 기술적으로 인맥을 무한 확장할 수 있게 된 SNS 시대 들어 특히 주목받았다.
과학잡지와 일간지 등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펴낸 이 책에는 던바의 수를 비롯해 진화를 둘러싼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학술서가 아니라 저자가 대중을 향해 쓴 글을 모아 펴낸 것이니만큼 이야기는 간결하고 명료하며 설득력 있다. 그렇다고 가벼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책은 인류 조상에 대한 논쟁 등 진화론의 핵심 주제는 물론이고 저자의 독창적인 연구 성과까지 두루 다루면서도 쉽게 읽힌다.
특히 인상적인 건 저자가 내놓는 진화의 가설 등에서 느껴지는 풍성하면서도 도발적인 상상력이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큰 위험 부담이 뒤따른다. 만일 생식 능력이 없거나, 양육을 소홀히 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이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불리한 선택을 유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가 내놓는 가설의 답이 이렇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려면 배우자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에 반영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관계의 파탄에 이르는 잠재적 요인을 예측해 제거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런 정도가 되려면 끊임없이 뇌를 진화시켜야 한다. 결국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적으로 적잖은 대가를 치르지만, 그보다 더 큰 진화적 이득으로 보상받는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인간의 언어는 여성들 간의 수다를 통해 진화했으며, 독일의 고위직 관료들이 직급이 낮은 직원보다 키가 평균 5㎝ 크며, 거북이나 악어는 알을 부화하는 둥지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자가 ‘던바의 수’ 가설을 보완해 내놓은 ‘3배수의 법칙’도 흥미롭다.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해 친밀함이 느슨해질수록 인맥의 숫자는 최대 3배수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가족같이 아주 친밀한 관계는 3∼5명, 친한 친구는 15명,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50명, 조직은 150명 정도, 이 관계가 더 느슨해지면 500명, 1500명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사회 관계망이 확장되더라도 관계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 피로를 느끼게 돼 관계 정리에 들어가게 된다. 책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우리는 모두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이다. 323쪽, 1만60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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