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 공격에 유엔은 無力
러시아 安保理 거부권 행사로
합법적 무력행사 번번이 좌절
유엔 2005년 ‘보호책임’ 도입
합법 아니지만 ‘정당한 무력’
새로운 국제관습법으로 진화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은 지난주 금요일 밤 시리아의 화학무기 시설에 대한 미사일과 공중폭격을 단행했다. 1주일 전에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서 40명 이상을 살상한 것이 공격의 이유였다. 이번 공격은 정확히 1년 전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미국의 폭격보다 2배 강한 규모였지만, 그 과정은 유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국제적 대응을 위한 결의안이 러시아의 거부권 사용으로 좌절된 후 무력(武力)을 사용했다. 이번 폭격 후에 긴급 소집된 안보리는 러시아가 제출한 무력 사용 비난 결의안을 찬성 3, 반대 8, 기권 4로 부결시켰다. 채택에 필요한 9개국 찬성에 훨씬 못 미쳤으므로, 미·영·프는 거부권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무력 사용은 다음 두 가지 경우만을 제외하고는 불법이다. ‘다음 세대를 전쟁의 참화(慘禍)로부터 구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은 안보리가 승인하는 집단안보 행위와 자위권 행사만을 예외로 하고 모든 무력 사용을 금지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못한 채 3개국이 시리아에 대해 무력을 사용한 것은 국제법적으로 또는 국제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유엔의 승인 없이 무력을 사용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력 사용을 합법화하기 위해 가장 많이 원용되는 것은 ‘자위권’이다. 자위권은 반드시 상대방의 공격이 시작되지 않더라도 임박한 공격에 대한 선제적(preemptive) 방어도 인정해 주는 것이 추세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전쟁처럼 미래의 공격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예방적(preventive) 자위권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건 아니다. 대개 자위권을 사용하는 국가는 그 지역의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이라도 있어야 하니까, 이번 시리아 폭격의 경우에는 자위권이 원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집단안보도 아니고 자위권 행사도 아닌 무력 사용을 정당화해주는 사유로 ‘인도주의’를 드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서는 유엔의 승인 전에라도 우선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1999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의 코소보 무력 개입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2005년 유엔 60주년 정상회의 합의문에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도입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정부가 자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개념이다.
국제법은 국가들이 합의한 조약과 국제관습법으로 구성된다. 인도적 개입을 위한 무력 사용을 인정해 주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관습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시리아 폭격 후에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다수 국가가 폭격을 비난하는 결의안에 반대한 것은 정치적 의미를 넘어서는 뜻이 있다. 보유 자체가 불법인 화학무기의 사용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합법적이지는(legal) 않더라도 정당한(legitimate) 무력 사용을 지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것 같다.
결의안이 논의된 안보리 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는 “화학무기로 죽은 아이들의 사진은 가짜 뉴스가 아니었으며, 시리아 정부의 계속적인 화학무기 사용을 막기 위해서 무력 개입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 대통령은 레드라인을 설정하면 반드시 지킨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2013년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고 미리 공언해 놓고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사례와 비교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세계에서 어떠한 경우에 무력 사용이 정당화되는 것이 인류 모두에게 바람직한지는 쉬운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만이 합법적 무력 사용을 승인해 줄 수 있는 현행 국제법 아래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인해 7년간 50만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시리아 내전에 대해 국제사회가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국제법과 제도도 결국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 중심의 사고로 발전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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