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의 화실에도 다시 봄이 찾아왔다. 봄은 때가 되면 오는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작가는 겨울만을 살아왔다. 봄과 열애하다 어느 순간 토라지듯 외면했고, 전형적인 농촌 들녘이 아닌 고봉준령의 산수를 주유(周遊)하고 있었다. 그러다 올봄 ‘밀당’이 끝난 걸까, 다시금 설레는 가슴으로 봄 들녘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 소식이 또한 우리를 설레게 한다. 곧고 반듯한 것이라곤 어디 한 군데도 없는 들녘, 그것이 우리의 자연이며 또한 우리 미의 본향이다. 강렬한 흙의 기운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힐링’ 아닌가. 그림이 될까 싶은 그저 그런 장면을 그림다운 그림이 되게 하는 그만의 퍼포먼스에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사진 같은 재현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낙서처럼 필치가 분방하다. 실컷 놀면서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것 같은 격이다. 실로 얄밉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