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침에 업계 “현실 외면
연구개발 자체를 포기할수도”
인력난 심화되거나 교란 우려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다. 신규 고용이 무서워 연구·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연구·개발(R&D) 자금의 30%를 신규 고용 인건비로 사용하라는 정책을 내놓자 중소기업들이 현실을 외면한 ‘탁상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보다 많은 R&D 예산을 지원하고도 성과가 미흡해 ‘퍼주기식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내놓은 ‘중소기업 R&D 혁신방안’이 신규 일자리 창출에 얽매여 중기 연구·개발 인력난을 더 가중하거나 교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 고양시에서 신발업체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19일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선의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짧으면 1년 길어야 2년 받을 수 있는 정부의 R&D 자금으로 신규 인력의 고용을 보장할 수도 없고 연구 역량을 키울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경북지역 한 농공단지의 기계설비 관련 중소기업체 대표는 “석·박사 인력은 지방 취업 자체를 피하고 있어 정부가 돈을 지원해도 연구 인력을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0인 미만 영세 연구소에서 신규 인력 고용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난데, 연구·개발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부에서는 기존 인력 조정 등의 편법도 심각히 고려 중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중소기업 R&D 혁신방안으로 지원 연구비의 30%를 신규 고용 인건비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총연구비 4억 원 이상의 R&D 지원 사업에는 청년 기술인력을 채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1만 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연구소 3만5000개 중 96%가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연구소로, 대부분 정부 등의 금융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특히 연구소의 역량과 상관없이 수도권, 중견 중소기업으로 신규 인력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가중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중소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중소기업 R&D 인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이 R&D 인력이 부족하고, 5곳 가까이는 5년간(2018∼2022년) ‘R&D 인력 수급 상황이 악화할 것’(45.5%)으로 예상했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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