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황광수 교수가 셰익스피어 450년 자취를 좇아 도착한 그의 생가. 정원 끝자락에 대문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월 북(wall book)이 세워져 있다.    이승원 제공
평론가 황광수 교수가 셰익스피어 450년 자취를 좇아 도착한 그의 생가. 정원 끝자락에 대문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월 북(wall book)이 세워져 있다. 이승원 제공

- 클래식 클라우드-니체, 셰익스피어, 클림트 / 이진우, 황광수, 전원경 지음 / 아르테

문화·철학·문학·과학 총망라
다채로운 작품들 탐험·재조명
국내 작가 100명이 직접 소개

셰익스피어 희곡 탄생한 장소
알프스에 깃든 니체의 발자취
‘황금빛 관능’ 클림트의 빈 찾아
1차로 3명의 ‘예술魂’과 만나


고전은 작품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문인이나 예술가,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살았다. 창작의 산실로 여행해 본 이들은 안다. 작품이 태어난 자리에 있으면 깨달을 수 있는 ‘무엇’이 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작품일지라도 기적처럼 눈이 밝아지곤 한다.

햇빛과 바람이, 안개와 물소리가 우리를 이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다 보면 마음이 신비한 작용을 일으킨다. 작품의 씨를 뿌리는 힘들이 상상을 자극하는 듯도 하다. 어떻게 보면 고전이란 그 씨앗을 품고 길러 찬란하게 꽃피운 것이 아니겠는가. 여행의 형식을 빌려 작품을 씨앗의 자리로 되돌리고 나면, ‘읽는 사유’와 ‘걷는 사유’를 한 줄로 꿰고 나면 고전을 더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 시대의 거대한 지적 여정이 시작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00명의 국내 작가가 세계 곳곳으로 독자들을 실어 나른다. 문화, 예술, 철학, 과학 등 지적 산맥의 전 분야에 걸쳐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찾아가서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 한국 출판계에서 오랜만에 시도되는 초대형 출판기획이다. 한국과 세계의 만남이고, 어제와 오늘의 대화이며, 사유의 체험이자 독서의 탐험으로 영혼의 스승에 대한 오마주다. 김남시, 나희덕, 백민석, 윤상인, 이정모, 이현우, 정여울 등 기라성 같은 이들이 베냐민, 소로, 헤밍웨이,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다윈, 카프카, 헤세 등 자신의 열하를 찾아 떠난다. 첫 번째로 짝을 이룬 이들은 황광수와 셰익스피어, 이진우와 니체, 전원경과 클림트다.

낯선 도시 서울은 소년에게 너무 추웠다. 함께 놀 친구마저 없어 고독이 사무쳤다. 겨울방학 숙제를 하려고 소년이 서점에서 고른 것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곧바로 문학적 황홀에 빠졌고, 영혼의 형식을 얻었다. 황광수는 말한다. “모든 시대를 위한 작가인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 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필연이고 운명이다.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소년은 아직 뜨겁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에서 시작한 여정은 런던의 글로브 극장을 거쳐 ‘햄릿’의 성인 덴마크의 크론보르성,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무대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줄리어스 시저’가 활약한 로마, ‘한여름 밤의 꿈’이 펼쳐지는 아테네까지 유럽을 관통한다. 격정의 언어가 이 기나긴 여정을 이끈다. 용광로 같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서른일곱 편이 순간순간 불려 나와 여행지마다 찬란한 빛을 던진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온 세상이 하나의 무대였다.” 여행하는 발들이 이 구절을 미끼로 온 세상에서 작품을 건지고 사유를 낚는다. 이로써 이 책은 훌륭한 셰익스피어 입문서이자 공간에 대한 좋은 안내서이고, 그 둘을 뛰어넘어 한 여행자의 문학이 된다.

“앉아 있지 말라.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그것이 무엇이든 믿지 말라. 근육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 니체는 내장으로 사유하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걷는 생각’이야말로 니체가 추구한 바였다. 운명에 대한 사랑은 단련된 다리로 지탱된다.

니체는 타고난 산책자이자 나날의 여행자였다. 학문적 여정이 시작된 스위스의 바젤, 바그너가 살았던 트립센, ‘차라투스트라의 바위’가 있는 영원회귀 사상의 탄생지 질바플라나, ‘니체의 오솔길’이 있는 프랑스의 에즈쉬르메르, 무덤이 있는 독일의 뢰켄까지 이진우는 니체의 발자취를 좇아 알프스 산맥을 넘나든다. “정신을 예리하게 만들지만 몸은 얼음처럼 차갑게 하는” 알프스의 빙하 속에서 니체는 사유의 망치를 벼린 후 서양 형이상학 전체를 한 방에 무너뜨렸다. 니체가 걸었던 한길과 오솔길, 지름길과 에움길로 저자는 우리를 안내한다. 단단히 다져진 생각의 길이자 경이로 가득한 여행의 길이다. 숙성된 언어와 그윽한 깊이가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우리가 사랑하는 이 “황금빛 관능의 예술가”는 “사랑의 힘을 통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려 했다. 클림트는 ‘어제의 세계’로부터 ‘내일의 예술’을 끌어냈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금빛 장식을 결합한 클림트의 작품들은 빈이라는 공간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전원경은 말한다. “클림트는 분명 천재였고, 두드러지게 혁신적인 예술가였지만, 그 이전에 빈 사람이었다.” 클림트는 빈을 거의 떠나지 않고 평생 살았다. 따라서 우리의 여행도 클림트의 황금색이 유래한 이탈리아 라벤나를 제외하면 오직 빈에서 이뤄진다.

‘국내 최대의 인문기행 프로젝트’를 자부하는 이 기획은 이제 첫걸음을 놓았을 뿐이다. 여행이 앞으로도 중단 없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건투를 빈다. 셰익스피어 340쪽, 니체 339쪽, 클림트 304쪽, 이상 1만8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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