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콘서트 구경 가자니
따라 하는 게 많아 힘들고
고상한 공연장 구경 가자니
옷차림 신경 쓰여 귀찮고…
편한 차림과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없을까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극장의 대형 ‘쑈’부터 동네 공터에서 하는 소리 잔치까지 이런저런 공연을 많이 따라다녔는데, 어느 날 명동에 있는 ‘시공관’에서였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전국명창대회 비슷한 공연이었을 게다. 어린 소리꾼부터 두루마기에서 머리카락, 수염까지 온통 새하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한 자락씩 뽑고 있었다.
객석은 마치 시장바닥같이 소란했다. 모두 절로 흥이 나서 ‘얼쑤’ ‘지화자’ 같은 추임새부터 ‘좋다∼, 그럼, 그렇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수처럼 손장단을 맞추는 등 객석 전체가 관객과 출연자가 함께 어울려 한바탕 신명 나는 마당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날의 장면은 내가 계속 음악을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여러 해 전, 친한 후배 국악인의 공연을 예술의전당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공연장답게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안내를 잘 받았는데, 공연이 시작됐는데도 출입문마다 여직원들이 서서 무대를 보는 게 아니라, 객석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순간, 마치 우리 관객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대 위에서 ‘수궁가’의 한 대목을 부를 때 곁에 앉은 집사람에게 귓속말로 해설해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직원이 달려오더니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란다. 아∼, 슬슬 달아오르던 흥이 찬물을 맞은 듯 사라져 버렸다. 그때부터는 숨소리도 죽이고 행여 옷자락이 스치는 부스럭 소리마저 신경이 쓰여 움직임도 조심스러워하며 음악을 들어야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만난 후배가 땀을 닦으며, 자기도 소리하기가 힘들어서 혼났단다. 소리가 나가면 부딪쳐서 돌아오는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소리를 던지면 그냥 깊은 어둠 속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서,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온몸에 있는 대로 힘을 넣어 소리를 지르게 되어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단다. 그날 이후로 멋진 극장에서 엄숙하게 감상해야 할 것 같은 국악공연을 점점 멀리하게 됐다.
3년쯤 전엔가,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내한 공연을 보러 잠실종합운동장에 갔다.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비닐을 덮고 그 위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는데, 비교적 앞자리여서 가깝게 공연 모습을 볼 수 있어 좋구나 하고 좌석 번호를 찾아 앉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주최 측이 나눠준 비닐 우의를 입고 공연을 감상하려는데, 노래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맨 앞자리 관객들이 일어서는 바람에 무대 천장에 매달아 놓은 조명을 빼고는 무대에 있는 연주자들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모두가 일어나서 공연을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발밑에 물이 괴면서 신발이 젖더니 바짓자락도 비에 젖기 시작했다. 젖은 옷이 살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밤바람의 냉기까지 더해져서 온몸이 추워서 떨려 왔다. 하는 수 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추위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두 아는 노래들이어서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과 함께 부를 수 있었다. 앙코르까지 공연은 두 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그날,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2주 동안 고생한 기억도 마치 어제같이 생생하다.
야외에서 하는 뮤직 페스티벌을 가끔 케이블 TV에서 녹화 방송할 때가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젊은 관중은 점점 역동적으로 변해간다. 손가락으로 하늘 찌르기, 제자리 뛰기 등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행동들을 보며 농담처럼 ‘밤이라서 많이 추운가 보다’라고 혼잣말을 해 본다.
야외 콘서트가 아니라도 요즘은 작은 공연장에서 하는 어느 콘서트를 가든 진행되는 패턴이 비슷하다. 솔로든 밴드든 힙합 뮤지션이든 노래를 부르다가 중간쯤 되면 객석을 향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요” 아니면 영어로 “Everybody Stand Up!” 하고 소리치면, 관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일어난다. 나는 영어를 모르는 척하고 끝까지 앉아 버티다가, 모두 일어서서 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마지못해 일어나게 되는데…. 갑자기 “Everybody Say Oh∼”라고 무대에서 리드를 하면, 충분히 훈련된 모든 관중이 따라서 “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아∼하∼”라고 외치면 “아∼하∼” 하고 소리 지르고, 손을 높이 들어 좌우로 흔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분위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따라 해야 하는 그런 공연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공연장의 음향은 어찌나 큰지, 부득이 그런 공연장을 찾을 때는 귓속에 들어가는 작은 귀마개를 하고 가기도 한다.
관중도, 젊은 친구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고 한바탕 움직여서 땀 흘리고 몸이 피곤해져야 공연에 같이 참여했다는 유대감을 느는 것 같다. 맞다, 그건 요즘의 트렌드라 하겠지만, 순전히 세대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다. 우리는 록 그룹이 무대에서 헤드뱅잉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역동감을 느끼며 즐거워하는데. 젊은 친구들은 직접 머리를 풀어헤치고 고개를 같이 흔들면서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
이것저것 따라 하라는 게 많은 젊은 친구들의 콘서트를 구경 가기가 점점 귀찮기도 하고 겁(?)도 난다. 무대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노래하는 친구들을 따라 관객들까지 함께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으면, 무릎이 아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객석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나는 가끔 그들의 젊음이 부럽기도 하다.
젊은 콘서트를 구경 가자니 이래저래 따라 하라는 게 많아서 힘들고, 고상한 콘서트를 구경 가자니 옷차림에서부터 신경 쓰이는 게 많아 귀찮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덜 움직이면서 편한 차림과 편한 마음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어디 없을까?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