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 김의규
삽화 = 김의규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3) 기계는 죽지 않는다

나 씻고 닦아온 칠십줄 할머니
독일제 유명 브랜드 커피머신
선물 받고 얼마나 기뻐했었나

출고 시점부터 치자면 열한 살
사람 나이로 치면 동년배일 듯
우린 또래의 情 나누며 살아가

영정사진 속의 주인 바라보며
죽지않고 버텨야 할 이유 고민


그가 심호흡과 더불어 두 손을 마주 비빌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결연함에 호응하여 나도 내부의 전열을 가다듬어 그의 왼쪽 검지가 가하는 압력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가상한 ‘럭키 세븐’ 시도도 내 무뎌진 시스템을 작동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호흡조절의 미묘함이 관건이었다. 전원 버튼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고 솥뚜껑 같은 그의 손바닥이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나는 머리통에 쩍, 금이 가고 말았다. 전번에 알루미늄 테이프로 땜질해 놓은 실금에 이어 두 번째 상처이다. 이번 건 꽤 얼얼하고 시큰한 게 심상치가 않다. 제기랄, 어쩌라고! 나는 저항의 신음을 내뱉었지만 우리 족속의 하나인 옆자리의 냉장고가 알아듣고 드드드드, 위로해 왔을 뿐 열혈인간의 귀에 가닿을 리 없다. 마흔이 가깝도록, 맹세컨대 그의 잘못이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아직 미혼인 그는 먹는 게 다 그리로 가는지 화통 삶아 먹은 목청으로 거실 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에이 씨…. 엄마! 이런 거 쫌 내다 버리라니까!”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온갖 잡동사니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장사 안 되는 골동품 가게처럼 보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 사이로 칼칼한 음성이 들려 왔다.

“아 좀 지대리라니까넌, 마르 앙이 듣고…. 요거마저 보고느 내레준다 했잖니? 내가 눌러야 마르 듣넌다 말이지. 뚜껑 또 빠개 논 거 아이니?”

에그그그그…. 힘겹게 무릎을 펴서 소파에서 일어나는 기척과 함께 목소리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부엌에 들어왔다. 애초에 나를 사온 이는 아니지만 십 년 가까이 나를 씻고 닦고 보수하며 써온 나의 주인이시다. 노인은 칠십 줄 후반이나 되었지만 오랜 교직 생활 중에 습관 들인 커피 마시기를 좋아해 아직도 하루에 원두커피 두 잔은 꼭 마신다. 팔 년 전 돌아간 그녀 남편의 빈자리를 지켜온 몇 안 되는 유품 중 우리 족속으론 인켈 턴테이블 다음으로 아낌을 받아온 게 나다. 유럽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당시론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독일제 유명 브랜드인 나를 선물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남편의 턴테이블로 아침엔 모차르트, 오후엔 드뷔시를 들으며 하루 두 번 내가 내려주는 향기로운 커피를 마셔온 나의 주인에게 나는 그냥 낡아빠진 기계가 아닐 것이다. 출고 시점부터 치자면 열한 살인 내 나이가 사람 나이론 동년배일 듯싶은 우리는 또래의 정을 나누며 함께 늙어가는 사이다.

노인의 앙상한 손이 아들의 등짝을 내려쳤다.

“이거 보라! 또 금을 내놨잖니! 뚜껑이 만신창이 돼설레 커피 향이 다 새삐리게 생겼구마느…. 어마이 집에 와서 자꼬 이래 부랑 뺄라며느 오지도 마라!”

“나 참! 누나가 출장 가며 그리 부탁하는데 어떻게 안 와? 엄마 별일 없나 확인하라고 해외서도 계속 카톡을 해대는데…. 알았어, 뭐 커피머신 까짓것 새로 하나 사다 드림 될 거 아냐? 밥 한 끼 얻어먹고…와 비싸다, 비싸. 뭐 하긴, 꿔간 돈 이자 주는 셈 칠게. 요샌 국산도 이거보다 더 좋은 거 많다고.”

“무스게 소리가? 내가 언제 이자 달라고 했니? 전번에 가제간 돈 늬 아버지 연금 남은 거 마지막 거이니 원금 보존이나 잘하란 말이다. 늬 장가보낼 밑천이었다고 그거이…. 제발 좀 한 직장에 지긋이 붙어있음 앙이 되갔니? 머리가 없나 재주가 없나….”

아들은 열불이 치받는지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병을 꺼내고는 퍽 하고 요란하게 문짝을 닫았다. 나보다도 십 년 이상 더 나일 먹은 냉장고가 그그그그그, 하고 괴로운 신음과 함께 내부에 고였던 체액을 흥건히 흘려보낸다. 냉장고에 기대 병째로 물을 마시던 아들이 꽥 소리를 질렀다.

“앗, 이건 또 뭐야? 엄마, 여기 바닥이 왜 이렇게 한강이야?”

“응 그거이…성에 제거기가 고장 나서 그래. 주말 지나고 사람 불러 고체야지. 작년에도 고쳈넌데 또 그러네.”

노인은 나를 살피다 말고 걸레를 찾아와 부엌 바닥을 훔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그런 노모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주머니서 카톡, 하고 우는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말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갈랬더니 그것도 안 되겠네. 나 그만 가볼게. 심장 안 좋은 사람들 바닥에 앉았다 갑자기 일어날 때 조심하래…. 냉장고는 누나랑 상의하시고 커피머신은 내가 담에 올 때….”

노인이 서둘러 말을 잘랐다.

“커피머신 늬 누나가 사다 놓은 거 있어야. 아직 이거이 쓸 만해서 앙이 바꾸는 거지. 신경 쓰지 말고 늬나 잘 지내라.”

아들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번 쳐다보더니 거실로 나갔다. 잠시 뒤 쾅, 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와 내가 안도의 눈길을 교환하는 사이 노인은 물이 흥건한 걸레들을 들고 부엌을 나갔다. 아마 베란다 옆 다용도실에서 그것들을 빨아 넌 후 남편이 서재로 쓰던 방으로 가 아들이 낮잠 자느라 어질러놓은 걸 정리하고 올 거라고 추측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예기치 않은 방문으로 오전, 오후 커피타임을 다 놓쳤으니 아마도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나 모차르트의 ‘소야곡’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오겠지. 나는 손님 때문에 어수선해진 기분을 가다듬으며 주인의 미묘한 호흡과 자상한 손길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엌창 밖으로 솟아오른 보랏빛 라일락 가지가 저물녘 봄바람에 꿈결인 듯 흔들리는데 드뷔시도 모차르트도 아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의 아들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영정사진이 들려 있다. 그는 내 앞에 사진을 내려놓고 말한다. 자 우리, 어머니에게 마지막 커피 한잔 끓여드릴까? 나의 전원 버튼에 단숨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윽한 커피 향이 돌아오지 않을 내 주인의 사진을 에워싸는 동안 나는 내가 죽지 않고 더 버텨야 할 이유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자명 소설가·한국미니픽션작가회 창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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