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은…

흥남철수때 피란… 거제 정착
사시 3차 앞두고 유치장 갇혀
“내 행동 잘못됐다 생각 안해”
大選 재수하며 권력의지 갖춰

싸움보다 대화 선호‘비둘기형’
외교안보 구상 키워드도 평화
우직·신중·답답 ‘고구마’별명
감정 안드러내고 농담엔 취약

퇴근후 밤늦도록 보고서 검토
꼼꼼·치밀함에 보고자 ‘긴장’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전쟁 피란민의 아들이다. 그의 부모는 모두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처럼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하해 경남 거제에 정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에서 “(선친은) 뿌리 잃은 삶을 사시다가 끝내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맡고 있던 2004년 7월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 씨가 여동생(문 대통령의 이모)을 만나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지난해 ‘한반도 위기설’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단호한 어조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밝힌 것은 이런 분단의 아픔을 직접 대면한 경험 때문이다.

평화는 문 대통령 외교 안보 구상의 키워드다. 그는 싸움보다 대화를 선호하고, 매파보다 비둘기파에 가깝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할 때도 문 대통령은 압박과 대화 병행이라는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 이 같은 일관성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이라 불리는 독일 쾨르버 재단 연설을 비롯해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요구했고,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 화답했다. 국제적 고립 상태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던 북한에 그나마 손을 내밀어 준 게 한국이었고, 이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협상 스타일 또한 변칙보다 정공법에 가깝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말은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법률가 출신답게 논리와 원칙을 중시하고 소신도 강한 편이다. 사법고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들은 문 대통령에게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3차 면접시험을 앞두고 찾아와 “데모를 할 때와 생각이 같으냐”고 물었을 때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결국 사법연수원을 차석 졸업했음에도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가 되지 못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김 위원장과는 정반대의 성향인 셈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우직하고 신중하다는 평가와 동시에 느리고 답답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기간 문 대통령에게는 ‘고구마’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청와대 한 참모는 “임기응변보다 한결같은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참모들이 꼽는 문 대통령의 또 다른 특징은 꼼꼼함, 치밀함이다. 스스로 “활자 중독으로 느껴진다”고 했던 그는 퇴근 후에도 보고서를 관저로 가져가 밤늦게까지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비서관은 “문 대통령은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현안에 대해서도 세부 내용까지 파악하고 지시를 내린다”며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항상 긴장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치 입문 초기 낯가림이 심하고, 부산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문 대통령은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변호사 일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그가 설립한 법무법인의 이름도 ‘부산’이다. 그런 문 대통령을 부산 밖으로 끌어낸 이가 문 대통령의 선배이자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는 문 대통령을 ‘어울리지 않는’ 현실 정치로 끌어냈다. 그는 저서 ‘운명’에서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랬다”고 썼다.

두 차례의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문 대통령의 외향성은 후천적으로 강화됐다.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됐고 특히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강한 호남을 찾아 “손을 한 번 다시 잡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늘 따라다니던 ‘권력 의지 빈약’이라는 비판도 이때부터 걷혔다.

다만 문 대통령은 여전히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농담도 즐기지 않는다. 청와대 한 참모는 “한번은 (참모들이 작성한) 연설문 초안에 분위기를 좀 풀 수 있는 농담 같은 게 적혀 있었는데, 문 대통령이 그걸 보고 웃으며 ‘아휴, 제가 이건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김일성군사大卒
독일어 능통·서구문화도 체득
신분·정체 숨긴채 인민군생활
농구할땐 게임전략 짜고 지시

‘고모부’ 장성택 ‘스승’리영호
숙청 정치로 권력기반 공고화
2013년 ‘核·경제병진’ 공식화
개인성명 통해 트럼프와 舌戰

올초부터 파격적 대화 제스처
南공연 관람 등 공개행보 늘려


북한의 3대 세습 지도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정보는 외부 세계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2010년 정치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2011년 권력을 승계한 이후 적어도 7∼8년 북한을 통치해옴으로써 ‘어린’ 나이와는 상관없이 권력 운용과 통치술을 익힐 대로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보기관이 휴민트(HUMINT·인적정보) 등 각종 정보를 분석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84년생, 올해 만 나이로 34세로 추정된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스위스 베른공립중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독일어에 능통하고 서구문화를 체득했다. 베른중 9학년(우리의 중3) 때 중퇴한 뒤 귀국한 김 위원장은 평양의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20세쯤 인민군에 입대해 일반 사병과 같이 군 생활을 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아온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는 어린 시절 김 위원장이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후지모토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어린 시절 “후지모토, 위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이제 중국은 여러 면에서 성공했다고 해요. 공업·상업·호텔·농업 등 모두가 잘되고 있다죠”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후지모토는 김 위원장이 조를 짜서 농구를 할 때 게임 전략을 치밀하게 짜고, 적극적으로 전략을 지시한 뒤 패배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등 승부욕이 강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장이 정치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9월 북한 노동당 대표자대회였다. 김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불과 1년 뒤인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 북한 최고 권력을 승계했다. 김 위원장의 나이 27세 때였다. 아버지 김정일은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된 뒤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았다.

김 위원장은 최고지도자가 된 뒤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고, 대학 재학 시절 스승이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하는 등 공포정치로 권력 기반을 강화했다. 후계 구도를 놓고 경쟁했던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는 강한 권력욕과 어린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한 데 대한 불안감, 경제난, 안보 위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3년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전까지 4년 동안 4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을 단행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으로 대북 군사적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자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릴 것”이라는 개인 명의의 성명으로 맞불을 놓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당 중앙위 제7차 3기 전원회의에서 병진 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새로운 전략 노선’을 제시했다. 핵무력 완성에 도달해 더 이상의 핵·미사일 시험이 필요 없다는 자화자찬인 동시에 핵무력과 비교해 경제발전 성과는 미진했다는 인정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당면목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1월 신년사를 기점으로 김 위원장이 파격적인 대남 대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이런 정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몇 달 전까지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 이외에 김 위원장을 제대로 만나본 외부 세계 인사가 없었다. 그러나 불과 네 달 사이에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에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고, 부인 리설주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을 만났다. 남한·중국 예술단 공연도 관람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와 회동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촉즉발의 말폭탄을 주고받았던 지난해 분위기가 무색하게 역사적인 미·북 첫 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다.

유민환 기자 yoogiza@,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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