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날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가 얽힌 가운데, 6월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과 맞물려 있어 긴장과 기대감이 넘쳐 난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21일 선언한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는 미국이 상정하고 있는 제한적 정밀타격 (surgical strike)을 상쇄하는 면이 있다. 좋은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가 이른바 ‘퍼주기’로 북한을 이끌어낸 1·2차 정상회담과 다르다. 우리도 노력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다. 왜 원했을까? 북한의 목적은 분명하다. ‘다시는 남한에 위협을 가하지 않기로 결심’해 ‘평화 체제’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철저한 자체 생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과 미사일 실험이 필요 없어진 북한은 생존 전략을 바꾼다. 도발보다는 협상에서 찾자는 전략적 변화다. 우리와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시험 중지를 선언한다. 협상 전략은 북한이 자초한 생존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 생존 문제의 본질은 미국 내 강경파 마이크 폼페이오, 존 볼턴의 등장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통제 체제에 있다. 김 위원장은 핵·경제 병진정책에 얽힌 철학적인 과오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의 생존 전략은 위험하고 복잡한 외교 게임을 만들어냈다. 서울·평양·워싱턴이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앞에 두고 추진하는 목표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평가될 일이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만으로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쥐고 있는 11월 미국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앞으로 열릴 미·북 정상회담에서 성공을 이끌어내면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함정이 너무 많다. ‘적절한 형태의 비핵화’로 성공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국내에 팽배해 있는 북한 비핵화 원칙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수세로 몰릴 수 있다.
평양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어떻게 끝나든 결국 ‘핵국가’로서 북한을 과시할 수 있게 된다. 경제 제재에서 일부 해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다. 평양은 체제 생존을 위해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개방·개혁으로 경제를 살려야 체제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통제와 개방 사이에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것이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는 평양이 개방·개혁 아래서는 생존이 어렵다는 철학을 가지고 북한 문제를 관리해야 한다.
서울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 또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승리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민족끼리’의 평화감에 취해 한·미 동맹의 대북 억지력을 소홀히 평가하고 한·미 관계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평화가 이뤄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평화는 생존 위에서만 성립된다는 철학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북한·미국 모두가 이번 정상회담을 뛰어넘은 철학과 안목을 가지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으면서, 위험하고 복잡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 게임의 축은 우리나 미국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북한 정권의 생존 문제에 있다. 당장은 비핵화가 최대 현안이지만, 결국 경제에 의해 북한 문제는 종결된다. 우리는 종전(終戰)이나 평화 체제 같은 선언으로 남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리고 북한 문제를 장기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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