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2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산업혁신운동 1단계 성과보고 대회’에서 박건수(앞줄 왼쪽 네 번째) 산업부 산업정책실장과 김준동(〃 다섯 번째)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 기업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2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산업혁신운동 1단계 성과보고 대회’에서 박건수(앞줄 왼쪽 네 번째) 산업부 산업정책실장과 김준동(〃 다섯 번째)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 기업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설 곳 없는 기업들 (下) 가중되는 기업 출연금 압박

정부 ‘2단계 산업혁신’ 추진에
참여 요구받는 기업마다 곤혹
이사회 의결 등 절차 엄격하고
반도체 빼면 시장 상황 어려워

전문가들 “자발성 없으면 강요
기업이 직면한 문제 해결한 뒤
자발적 기부 땐 시너지 클 것”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혁신운동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자발성’ 여부에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스스로 내놓는 기부금을 통해 2·3차 협력업체는 물론 영세 중소기업의 근로환경을 개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돈을 내야 하는 대기업들은 사실상 ‘강요된’ 정책이라는 반응이다. 정부가 반(反) 기업적 정책에 집중하며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담보될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로부터 2단계 산업혁신운동 참여를 요구받은 대기업들은 회사 내부사정 등으로 인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기업이 연루됐다는 여론으로 인해 주요 대기업의 대외 기부금 출연 자체가 매우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기부금을 출연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도 엄격해졌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앞서 대기업을 통해 조성된 상생협력기금을 대기업 2∼3차 협력사뿐 아니라, 거래하지 않는 중소기업까지 지원 대상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각 대기업 내부에서는 아무 관련 없는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기부금을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또 조선업 분야 기업의 경우 1단계 산업혁신운동 초반에 구조조정으로 기부금도 내지 못하고 중도에 빠진 바 있어, 이와 유사한 기업들은 기부금 자체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산업계에서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통신, 유통 등은 고전하고 있다. 기업 이익률이 높아지거나 경제가 활성화되는 분위기도 전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도 큰 부담인데, 이 같은 기부금에 대한 요구도 외면할 수 없어서 기업들은 속앓이만 하는 상황이다. 1단계에 참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 덕분에 실적 좋은 일부 기업 이외에 다른 곳은 기금 마련에 애로점이 많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각인된 대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공헌(CSR)’ 등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가 매우 나쁘다. 이를 전환하는 노력을 대기업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혁신성장’은 신산업 육성과 주력 산업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포함돼 있으며, 이 세 개의 축이 끌어갈 것이라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과거 정부에서 대기업들은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는데도 고용과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인식 자체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 동기가 없으면 이번 정책도 결국 부담”이라며 “당장 가시적으로 기부금을 받아 생색내기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건 단편적일 뿐이며,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준 뒤 자발적인 기부 등을 요구한다면 더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기업이 시도했던 혁신 기술 중에서 사업 연관성이 적어 쓰지 않는 기술을 중소기업에서 쓸 수 있도록 한다든지, 실질적으로 혁신 기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정민·권도경·유현진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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