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거리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인 차명숙(57) 씨가 5·18 당시 고문 및 잔혹 행위,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던 상황을 폭로했다. 차 씨는 당시 광주교도소 교도관 등 관련자들을 고소하기로 했다.

차 씨는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18 직후 505보안대와 상무대 영창, 광주교도소를 오가며 고문을 받았던 상황을 폭로했다. 그는 “당시 군 계엄 하에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다”며 “특히 여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해야 했고, 조금의 인권도 보호받지 못했으며,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계엄군 수사관들은) 여성들을 책상 위에 앉혀놓고 물을 끼얹어 가면서 어깨가 빠지도록 몽둥이로 등을 두들겨 팼다”며 “저 또한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하얀 살이 터져 피가 나와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했으며, 살아서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끔찍한 고문수사를 받은 후인 80년 10월 2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혁시갑’을 한 채 징벌방에서 생활할 때는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며 “교도소 측은 자살을 미연에 방지한다며 혁시갑을 채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혁시갑은 몸에는 가죽 허리띠(폭 10㎝, 두께 3㎝)를, 양 손목에는 가죽 수갑을 채운 뒤 허리띠와 수갑을 25∼30㎝가량의 쇠줄로 연결한 것으로, 식사 등 최소한의 활동을 할 경우에도 몸을 많이 쓰지 못하도록 고안한 계구다.

차 씨는 “수사관들은 한차례 극심한 고문을 자행한 뒤 대부분 조작된 7가지 항목의 범죄 사실을 들이밀면서 시인할 것을 강요했다”며 “말을 듣지 않으면 사형이나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7가지 범죄 사실 중 1가지만 빼고 나머지는 허위사실이었다”며 “심지어 ‘현 정부를 따르느니 김일성을 따르겠다’는 하지도 않은 말을 시인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차 씨는 당시 허위자백 강요에 관여한 광주교도소 부소장, 보안과장 등 6명에 대한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차 씨는 이와 관련, “당시 광주교도소의 ‘동태(시찰) 상황’ 문건에 나오는 사람들이 교도관들이기 때문에 교도관들을 먼저 고소할 생각”이라며 “당시 수사관 등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대로 추가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38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상황을 밝힌 배경에 대해 “2011년 재심을 신청해 2013년 무죄판결을 받은 뒤 33세, 31세인 두 아들이 커다란 용기를 줬다”고 설명했다. 차 씨는 5·18 당시 군사법원에서 소요, 계엄법 위반죄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뒤 1981년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차 씨는 △5·18진상조사위원회는 80년 5월에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 행위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할 것 △광주교도소는 80년 당시 고문수사와 가혹행위를 사죄할 것 △5·18 연구 단체 및 연구자들은 진실을 정확하게 기록할 것 △5·18 관련 단체들은 80년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한 여성들을 찾아내 그들의 증언을 듣고 역사적 진실로 기록할 것 등을 촉구했다.

광주=정우천 기자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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