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판문점 회담 직후 남북의 두 정상은 기념식수를 했다. 기념 나무는 ‘1953년생 반송(盤松)’이라고 한다. 반송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작은 키에 가지가 옆으로 퍼진 모양새가 넓적한 쟁반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 반송 앞쪽에는 화강암 표지석이 있다. 한글로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귀를 새기고 두 정상의 직함과 서명을 박았다.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길이 남기려는 뜻일 게다.
여기서 얘기할 여담 거리는 나무의 종류도, 표지석의 재질도, 글귀의 서체도 아니다. ‘기념(紀念/記念)’이란 말이다. 우리 국어사전은,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시중의 논란은 종종 한자에서 발생한다. 쟁점은 ‘紀念’과 ‘記念’ 중 어느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국어사전 역시 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957년 판 큰사전(한글학회)에서는 ‘紀念=오래도록 사적을 전하여 잊지 아니함’, 그리고 ‘記念=기억하여 잊지 아니함’으로 구분하여 표제어로 올렸다. 그런데 ‘국어대사전’(민중서관·1961년, 민중서림·1982년)은 紀念을 ‘記念을 통속적으로 잘못 쓰는 말’이라고 풀이했고, 이후의 사전들도 혼용했다.
4·19혁명기념회관은 서울 서대문역에서 세종대로 네거리를 잇는 새문안로를 앞에 두고 문화일보 사옥과 마주 보고 있다. 1999년 4월 19일, 회관 내 기념도서관 준공식 때에는 ‘記念’이란 한자를 썼으나, 곧이어 ‘紀念’으로 바꿔서 오늘에 이른다. 이 또한 ‘기념’이란 말의 한자 표기 논란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현재 국립국어원의 웹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념·기념되다·기념하다 세 단어만 ‘紀念/記念’을 복수 어원으로 올리고, 나머지 복합명사는 모두 ‘紀念’으로 통일해 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도 ‘紀念=중국식 한자어’ ‘記念=일본식 한자어’로 기억하면 명쾌하게 정리된다.
이쯤에서 기념이란 한자어의 혼란을 수습하고 기념식수 얘기로 돌아가자. 기념식수에는 사람·사실(사건)·시간이란 3요소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 기념식수는 가타부타할 일이 못 된다. 다만, 기념수(紀念樹)와 표지석은 훗날에 증언할 것이다. 이번 회담이 과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념식수를 할 만한 사건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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