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4·27 정상회담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외교의 힘이다. 남북한 간의 오랜 대결국면을 전환시킨 것이 바로 평창 스포츠외교였다면, 악화 일로의 북·미 관계에 신뢰의 징검다리를 놓은 것은 대북 특사외교였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가능성의 예술’이 곧 외교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 외교는 지금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생소한 반면, 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어야 하는 시점”인 ‘마키아벨리안 모멘트’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역사가 펼쳐내는 변덕과 격변의 순간”에 외교 지도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종시대 ‘32년간의 평화’는 뛰어난 외교관, 즉 이예와 신숙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활약에 크게 힘입었다. 이예가 15세기 전반부의 대일 외교를 이끌었다면, 신숙주는 후반부의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 갔다. 인상적인 것은 1443년(세종 25년)에 ‘계해조약’을 체결할 때 이예와 신숙주가 보인 협업의 모습이다. 당시 이예는 대마도에 머물면서, 조선통신사 신숙주 일행이 교토(京都)에서 무사히 돌아오도록 돕는 한편 대마도주와의 대화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 조성에 힘썼다. 세종은 일본을 가장 잘 알고 신뢰가 돈독한 71세의 이예를 체찰사로 보내 신숙주 일행을 측면 지원케 했다. 신숙주가 아랫사람들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대마도주에게 ‘세견선(歲遣船) 등에 관한 조약 체결이 곧 도주(島主)의 재량권을 강화한다’는 점을 들어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예의 적극적인 조언과 지원 덕분이다. 원로 외교관 이예가 43세 연하의 청년 신숙주에게 그 나라 사람과 물정에 대한 고급 정보를 긴밀히 전수하면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도록 돕는 장면은 ‘외교승계의 전통’이 없는 우리 눈에 진기하기까지 하다.
신숙주의 책 ‘해동제국기’는 그렇게 물려받은 일본 등 주변국의 지리정보와 외교의 방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책 서문을 보면 세종 정부가 주변국 외교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내수(內修)’였음을 알 수 있다. “교린의 방도는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있지 않고 안을 잘 정돈하는 데 있고, 변방 방어에 있지 않고 조정(朝廷)을 잘 이끄는 데 있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내수, 즉 안을 잘 정돈하고 조정을 잘 통솔하는 데서 외교 능력이 생긴다는 신숙주의 말은 사실 외교협상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뛰어난 외교관은 자국의 국력 요소들 중 사용 가능한 것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인데, 사용 가능한 국력 중에서 중추가 “정부의 질”이기 때문이다. 특정 외교정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함께 국민 다수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이 뒷받침될 때 외교 협상은 마침내 국익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고금동서의 통설이다.
신숙주는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순임금에게 익(益)이라는 신하가 했던 말, 즉 ‘일곱 가지 익의 경계(益之戒)’를 상기시켰다. 즉 “① 비록 평화로울 때라도 법도를 잃지 말고 ② 게으름 피우거나 향락에 빠지지 말고 ③ 어진 이에게 맡겨 의심하지 말고 ④ 사악한 자를 쫓아낼 때는 망설이지 말며 ⑤ 도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백성의 칭찬을 구하지 말고 ⑥ 자기 욕심을 채우려 백성을 거스르지 말며 ⑦ 나태하여 황음(荒淫)한 데 빠지지 않으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왕께 귀의할 것”이라는 조언이 그것이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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