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권력층 모여 살던
종로·청계천 북쪽의 주거지
1930년대 일본인 늘어나자
조선인 마을 지키고자 조성
2001년 북촌가꾸기로 변신
전통 보존하며 문화 거리로
유네스코 ‘亞太유산상’ 받아
계동길 초입 ‘북촌문화센터’
방문객·주민 만나는 공유공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옥마을인 북촌은 종로와 청계천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임금이 살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마을인 까닭에 조선시대 권력층이 모여 사는 최고의 주거지였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곳에 있었던 계동궁은 고종의 사촌형이 살던 집이었으며 고위관리의 집들이 즐비했다. 북촌에는 주택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의료기관인 제생원과 공주의 남편인 부마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의빈원 같은 관공서도 함께 있었다. 최고의 권력자들이 모여 살던 곳인 만큼 건물의 규모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백인제가옥의 규모에서 그 당시 집주인의 높은 권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북촌 한옥의 대부분은 ‘ㄱ’자나 ‘ㅁ’자형의 작은 규모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한옥은 건축개발업자인 정세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성에 집을 짓고 일본인 마을을 확장해 가자 조선인의 마을을 지켜내고자 북촌의 땅을 사들인 후, 작은 단위로 나누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근대적인 도심형 한옥을 만들어 냈다고 전해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전통한옥이라고 생각했던 북촌 한옥의 대부분이 사실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신세대 한옥이었다. 새로운 한옥의 형태는 새로운 북촌의 모습이 됐고 이는 전통이 됐다.
지금은 북촌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인기 있는 동네지만 이러한 인기를 갖게 된 것은 사실 그리 길지 않다. 아파트가 합리적인 주거의 형태로 주목을 받으면서 길이 좁아 차가 들어갈 수 없고 현대적인 급배수 시설을 갖추지 못한 이곳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미지의 마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시작한 ‘북촌가꾸기사업’으로 북촌은 또 다른 모습의 한옥마을로 변신을 시작했다. 주민들과 전문가 공무원들이 힘을 합쳐서 낡은 한옥과 마을을 현재의 삶에 맞는 형태로 바꾸어 나갔고 이렇게 변화된 모습에 환호하는 많은 사람이 이 마을을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주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보존상’을 받기도 했다.
북촌은 관리를 위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가회동, 재동, 계동, 원서동, 삼청동, 안국동, 인사동 등 다르지만 유사한 뿌리를 가진 문화공동체의 이름이다. 구한말 학자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등장하는 북촌이라는 이름은 요즘으로 치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브랜드다. 지역브랜드는 지역과 지역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특별하게 인식시키는 강력한 수단이다. 잘 가꾸어진 지역브랜드는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산업, 관광을 포함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현대의 마을과 도시들은 강력한 지역브랜드를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역브랜드가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브랜드가 힘을 갖기 어렵다. 북촌의 브랜드에는 역사적으로 쌓여온 문화의 힘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북촌의 건물과 마을의 형태가 계속 바뀌어 왔지만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해 유지되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안국역에서 중앙고등학교에 이르는 계동길 초입에 위치한 ‘북촌문화센터’는 북촌만의 독특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곳이다. 전형적인 북촌의 양반집을 개조해 북촌마을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여러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진 북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북촌을 찾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홍보전시관과 전통문화 강의실, 주민사랑방으로 구성된 ‘북촌문화센터’가 관광객을 포함한 외부방문객과 주민들이 만나는 공유공간이라면 ‘북촌마을서재’는 작은 도서관과 주민사랑방으로 구성된 북촌 마을주민들의 공감 공간이다. 1200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마을 서재에서는 자연을 배경으로 누마루에 올라 책을 읽을 수 있다. 높게 올려진 한옥 지붕 아래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마을은 단순히 영역의 구분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공동체이다. 마을주민들은 같은 공간에서 기억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마을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 모여 마을의 역사가 된다. 계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내 친구들에게 꼬불꼬불한 골목과 마을우물은 북촌에 대한 기억이자 역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의 역사는 북촌의 자부심이 되었다. 내게 북촌의 골목과 마을우물이 자랑인 것처럼 ‘북촌문화센터’와 ‘북촌마을서재’는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고 북촌의 새로운 자부심이 될 것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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