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일반화되는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지금까지의 노동·소비·여가의 순환구조가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예상한다.  자료사진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는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지금까지의 노동·소비·여가의 순환구조가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예상한다. 자료사진

■ 5부, 문화혁명 - ① 노동·놀이 영역 파괴

노동·여가 대립하는 것 아냐
능동적 생산자로 탈바꿈하는
재교육 인프라 구축 등 시급

일자리 급감 등 우려 높지만
“인간과 분업 정착” 전망 우세
오히려 ‘늘어난 여가’가 불안


지난 2004년 주5일제가 시행됐을 때,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주5일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해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도입되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그 과정은 지난했고, 갑자기 휴일이 2배로 늘어난 대중도 정작 ‘뭘 하나?’ 우왕좌왕했다. 2000년대 이후 영화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각종 지원책을 기반으로 문화 전반이 꽃을 피운 것도 주5일제 시행과 맞물린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대중을 끌어안기 위해 문화 산업이 발달한 셈이다. 인류는 또다시 일할 기회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기술의 발달은 인공지능(AI)의 현장 배치를 현실화했고, 인간의 자리를 AI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일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게다가 평균 수명도 증가했다. 은퇴 후 일하지 않는 삶까지 계산해야 한다. 평균 수명이 40~50세였던 19세기 철학자들의 지침으로 인생을 재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들은 70~90세까지 살아본 적도 없지 않나? 그래도 몇몇 책과 영화를 살펴보면 인간은 꽤 미래를 잘 예측하고 대응해온 것 같다. 1968년 개봉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AI가 인간과 소통하게 될 것임을 예언했고,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일찌감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복제인간을 경고했다. 1990년 제작된 ‘백투더퓨쳐2’는 25년 후인 2015년 사회를 그렸는데, 이 영화에 등장한 평면 벽걸이 TV, 화상 전화, 지문 인식 기술은 실제로 2015년에 상용화됐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본 영화는 소설가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1956년)을 원작으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다. 2054년이 배경이다.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예측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 영화에 등장한 홍채 인식, 증강현실(AR), 자율주행차 등도 2018년 이미 현실이 됐다. 이렇듯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상상력을 앞지르는 모양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견지해야 할 문화적 소양은 무엇일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 ‘백투더퓨쳐2’ ‘마이너리티 리포트’(왼쪽부터)는 15∼35년여 전 개봉됐음에도 비교적 미래 사회를 정확히 예측해 훗날 재조명받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백투더퓨쳐2’ ‘마이너리티 리포트’(왼쪽부터)는 15∼35년여 전 개봉됐음에도 비교적 미래 사회를 정확히 예측해 훗날 재조명받았다.

온라인 게임회사에 고용돼 직업적으로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이들은 노동을 하는 것일까, 놀이를 하는 것일까. 저명한 미국의 테크놀로지 분야 저술가 줄리언 디벨은 중국의 게임업체 소속 플레이어들을 관찰했다. 플레이어들이 퇴근 후 무엇을 하는지 알아본 것이다. 이들이 만약 게임을 노동으로 생각한다면 퇴근 후에 게임하기를 회피할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놀랍게도 상당수 플레이어들은 퇴근 후 다시 PC방으로 달려가 근무 중에 했던 게임을 계속했다. 디벨은 “디지털 환경은 놀이를 생산성으로 연결시키는 데 효율적”이라며 애써 ‘놀이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낸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일종의 ‘일중독’ 혹은 ‘게임중독’은 아닐까.

◇노동과 놀이의 경계는? = 노동과 놀이는 오랜 철학적·사회경제학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고대 이래 노동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자 신적인 세계 질서를 구현하는 신성한 활동이었다. 노동과 유희(놀이, 축제)의 뚜렷한 구분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해 대규모 노동력이 대규모 생산에 필수적 전제 조건이 되면서, 노동자가 노동을 투입한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의 소외’가 부각됐다. 디벨이 했던 실험의 가설은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란 저서에서 주장한 개념을 전제로 한다. 그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모든 문화의 기원에 놀이가 있고 인간은 놀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보았다. ‘소외된 노동’은 유희의 성격을 잃어버린 노동이다. 하위징아는 노동과 놀이를 구분했다. 놀이가 노동이 아닌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 행위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유희로서의 노동’이 가능했던, 현실적 삶과 구분되는 시공간을 하위징아는 ‘매직 서클’이라 불렀다. AI와 사물인터넷(IoT), 즉 ‘포스트휴먼’ 시대의 노동은 매직 서클을 희미하게 만든다. 질문은 계속된다. 그것은 유희처럼 자유로운 노동인가, 퇴근 후에 계속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의 놀이는 진정한 놀이인가, 인터넷이나 ‘단톡방’으로 업무 정보를 파악하거나 지시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휴식의 경계는 어디인가, 침대 위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해 네트워킹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건 놀이라 할 수 있는가 등등. 그 접속은, 이번에 페이스북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규명 과정에서 명확해졌듯, 마크 저커버그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4차 산업 시대, 미래의 노동은? =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IoT와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등 AI 신기술을 누가 실생활에 먼저 적용하는가를 경쟁하는 전람회였다. SF영화 속의 ‘1가구 1로봇’ 시대가 머지않은 듯한 미래를 보여주는 그때, 일본의 보험회사 후코쿠생명이 보험금 청구 직원을 IBM의 인공지능 ‘왓슨 익스플로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바탕으로 하는 차세대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전망과 어두운 전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 전망은 여전히 엇갈린다.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들고 나온 세계경제포럼(WEF)은 500만 개의 일자리 감소를 공공연히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궤도에 오르면 허드렛일을 놓고 기계와 다퉈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일자리’만 놓고 볼 때 어두운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노동의 종말’을 통해 성장 없는 실업을 우려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도 “IoT는 일자리를 없애면서 창출하는 양면성을 가지며, IoT 인프라가 세계 곳곳에서 구축되는 향후 40년은 일자리 수요가 급증하며, 장기적으로 인간과의 분업이 정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를 전망하는 ‘인간은 필요 없다’의 저자 제리 캐플런도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일자리 수의 문제와 함께 AI 신기술로 인해 나타날 ‘탈(脫) 노동’의 양상과 그로부터 늘어날 여가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 영국 싱크탱크 뉴이코노믹재단(NEF)은 가까운 미래에 ‘주 21시간 노동’의 시대가 불가피하게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탈(脫)노동 시대의 기계와 인간 =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현대인의 일상을 촘촘히 묶었던 노동·소비·여가의 순환구조가 바뀌며 우리 삶의 리듬을 변화시킬 것이다. 돌아보면 1차 산업혁명 시기에 나타난 규칙적인 임금노동의 역사는 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 연구자들은 ‘탈노동의 상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탈노동은 자본-노동, 기계-노동의 대립적 이분법을 넘어선 사고다. 그러자면 AI를 다루는 SF영화에서 보듯, 인간-기계의 관계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에서 노동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 바깥에서 한층 의미 있는 삶을 모색하며 노동의 미래에 대한 더 나은 생각을 찾아내는 일이다.

마르크스가 인간 소외의 원천을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대립에서 찾았다면, AI 시대의 철학자로 근래 다시 주목받는 질베르 시몽동은 기술적 개체와 인간 개체 사이의 생리-심리학적 불연속성에서 찾았다. 즉, 장인이 자신의 신체로 연장을 움직이던 시대에는 인간이 기술적 대상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소외가 없었으나 자동화가 되면서 이 같은 연속성이 상실된 데서 소외의 근원을 보았다.

이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국제 심포지엄 ‘슈퍼휴머니티: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디자인하는가’에서 ‘포스트휴먼 시대, 탈노동은 가능한가’를 발표한 철학자 김재희 박사는 “노동으로부터 탈노동으로의 이행은 실체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이라며, “인간과 기계는 더 이상 노동을 둘러싸고 대립하거나 지배-피지배 관계가 아니라 둘 사이의 상호협력적 관계로 대체돼야 한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가처분 시간’ =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30년에는 주 15시간만 일하게 되며, 우리 손자들은 따분함 때문에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위 ‘남아도는 가처분 시간’이 사회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노동에 종속된 인간에게 늘어난 여가도 ‘불안’인 것이다. 여전히 ‘과(過)노동’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는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포스트휴먼’ 시대에 노동시간의 단축은 불가피하다. 탈노동 시대에는 노동과 대립하는 의미로서의 여가는 더 이상 창조적이지 못하다. 10여 년 전 모 카드 회사의 광고카피였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노동의 연장선상에서 ‘재충전·탈출로서의 여가’를 말했다. 근래 개인의 일과 생활이 균형을 유지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해 ‘조직에 헌신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이 또한 노동-여가의 이분법 안에 있다. 탈노동 시대에는 노동 중심이 아니라 여가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중심에서 문화중심으로의 이동은 그 주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탈노동 시대에 대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연세대 바른ICT연구소의 임지선 박사는 “AI 시대의 일자리와 여가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고용 창출과 대체 효과에서 달라질 것”이라며 “수동적 노동자가 능동적 생산자로 바뀔 수 있는 재교육 기회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생산활동을 하는 기존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언제든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과 인터넷 등을 통한 교육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지적 필요에 맞게 부담 없이 재교육·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여가를 사회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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