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잡았어 /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 시공주니어

그림책을 만들 때 그림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대개 글로 쓰지 않는다. 온전히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글 없는 그림책은 그런 점에서 독주로 보여주는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무대에는 글자가 없고 오직 그림의 세계만 펼쳐지지만 관객은 그 그림을 따라가면서 감추어진 이야기의 협연을 들을 수 있다. 고전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처음 글자 없는 그림책을 대하면 어떻게 읽어야 하나 당혹스럽겠지만 이 장면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상상해보면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글 없는 그림책의 장인’으로 불린다. ‘시간상자’ ‘이상한 까망씨’ ‘구름공항’을 비롯한 그의 걸작들은 모호한 상상이 이미지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내 안의 뚜렷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는지 독자 스스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열 사람이 읽으면 다 다른 문장으로 풀어나가지만 결국 비슷한 이야기에 닿는다. 그는 여섯 번이나 칼데콧상을 수상하면서 이 흥미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내가 잡았어’는 어느 어린 외야수의 이야기다. 시작하면서 작가는 ‘아름답게 빛나는 침묵을 위해’라는 헌사를 적었다. 이것은 여러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끝까지 공을 쫓아 달렸던 외야수들, 수많은 공을 던지면서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던 후보 선수들, 소리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그럴싸한 명패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인생 자체가 글 없는 그림책인 사람들에 관한 경의의 표시일 수도 있다. 주인공은 야구장 펜스 너머에서 맴돌기만 했던 아웃사이더다. 그런데 우연히 기회를 얻어 외야수로 투입된다. 정말 잘하고 싶었고 외야로 공이 떴고 “내가 잡을 게!”라고 외친 뒤 있는 힘껏 달려가지만 번번이 넘어져 공을 놓치고 만다. 작가는 이 안타까운 돌진을 느리게 바짝 붙어서 따라간다. 팀에 다시 위기가 닥쳐오고 기회는 많지 않다. 주인공은 다시 달려간다. 지켜보던 새와 바람이 그의 도전을 돕는다. 그리고 마침내 잡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귀중한 순간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더그아웃 장면은 음성이 지원되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어린이가 어떤 격려와 소감을 나누고 있을지 즐겁게 짐작하면서 책을 덮는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이 책에서 환상을 불러오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높이 높이 들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도전이 마지막 기회였을 거라고 실패에 낙담하는 모든 어린이와 어른에게 권한다. 44쪽, 1만3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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