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자라섬서 만난 50代 야영 마니아들
최종호·문상희 부부
- 별 보며 기타칠때 제일 행복
‘왜 사서 고생’반대하던 아내
이제는 카라반 캠핑 더 반겨
‘디자이너→장비개발’김경민
텐트서 풍경 못봐 아쉬워하다
2009년 창문 달린 텐트 개발
캠핑중 얻은 아이디어 제품화
류승범·조연우 부부
야외선 젊은이와도 쉽게 교감
자연서 얻는 지혜 삶의 활력
캠핑 인구 600만 시대가 멀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캠핑 인구는 2016년 이미 5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피로한 일상을 떠나 야외에서 자연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사회적 갈망이 커지고 있다. 캠퍼밴이나 카라반(caravan·승용차에 다는 이동식 주택) 등 캠핑카 등록 대수도 지난 2007년 346대에서 2016년 6768대로 9년 새 20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캠핑 장비 구매자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50대는 자녀 교육과 결혼 준비로 가장 소비가 많아지는 연령대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직장을 떠난 이도 적지 않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캠핑을 통해 흙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의 향수를 달래고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는다. 어떤 이는 캠핑을 통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며 ‘인생 2막’을 열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일원 자라섬캠핑장에서 만난 화물트럭 기사 최종호(63·경기 광주시) 씨는 카라반 오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삶을 꿈꾸며 지난해 11월 카라반을 장만했다. 그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승용차에 카라반을 걸고 부인 문상희(59) 씨와 강원 강릉이나 인제 등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홀연히 떠난다. 지난해 말에는 경포대에서 카라반 캠핑을 하며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작법이 익숙지 않아 좌충우돌했지만, 이젠 주위의 도움 없이도 차량 연결·분리는 물론 야영을 준비하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한다. 밤이 되면 별을 보면서 기타를 연주하곤 한다. 최 씨가 야영지에서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문 씨는 처음엔 카라반 구매를 반대했다. 비용도 한두 푼이 아니거니와,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호텔이나 펜션이 널렸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이유였다. 장장 5개월을 옥신각신하다 결국 문 씨가 한발 물러섰다. 남편의 푸념이 마음에 걸렸다. “여보, 나 지난 40년 가까이 한 번도 쉰 적이 없어. 오로지 우리 식구 번듯하게 살 날만 생각하며 일해 왔다고. 이젠 애들도 다 출가했고, 우리도 이 정도면 먹고살 만하잖아.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즐기면서 살면 안 돼?”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해 뜨기 전에 출근해 종일 전국을 누비다 녹초가 돼 귀가해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 두 자녀를 키워 냈다. 맏딸은 이미 시집가 아들을 낳았고, 최근에는 둘째도 독립했다. 평생을 고생한 사람, 원 없이 여행이나 다니게 해주자는 생각으로 카라반을 샀다. 지금은 문 씨가 카라반 캠핑을 더 반기는 분위기다.
최 씨는 ‘왜 환갑이 지나서야 카라반 캠핑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자연을 누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자연은 제게 엄마이자, 스승이고, 친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적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껏 나를 살게 한 원동력이 됐어요. 세상의 이치는 물론 역경을 이겨내는 노하우까지 모두 자연에서 얻었죠.”
이 같은 자연예찬론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됐다. 강원 강릉의 시골에서 자란 그는 학교만 끝나면 바닷가로 뛰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조개나 성게를 잡아 허기를 채우고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놀다 보면 하루가 짧았다. 심란하고 울적할 때면 산에 올라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인내심을 기르고 삶의 지혜를 배웠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무일푼으로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지금까지 날 이끌어준 것은 자연이 가르쳐 준 끈기와 인내심이었다”며 “앞으로는 손자를 데리고 캠핑을 하며 자연의 이치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흥시에서 캠핑장비 개발업체를 운영하는 김경민(52) 씨는 캠핑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7년 전만 해도 그는 서울 충무로에서 20년 가까이 잡지나 단행본 등 출판물을 편집하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디자이너였다. 업계 특성상 마감에 쫓기고 격무에 시달리는 일상 속에서도 그의 유일한 낙은 부인·두 딸과 함께 캠핑을 가는 일이었다. 자연 속에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머릿속이 맑아져 다시 일할 에너지가 생겼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텐트에는 창이 없어 안에서 바깥 풍경을 즐기는 데 제약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2009년 최초로 우레탄 창을 낸 텐트를 개발했다. 2년 후에는 아예 회사를 차려 전업을 했다. 과거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토대로 제작된 독특한 디자인의 텐트와 각종 부대 장비는 많은 캠핑 애호가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김 씨는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지붕에 2인용 텐트가 탑재된 지프를 몰고 자연 속으로 떠난다. 갖가지 야영 장비와 식료품이 실려 있는 그의 지프는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김 씨는 “과거에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일했으나, 지금은 취미와 일이 일치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캠핑을 가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다시 캠핑을 떠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50세를 넘어 할 수 있는 취미 중 으뜸이 캠핑”이라고 강조했다.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자영업자 류승범(57)·조연우(여·49) 씨는 부부 캠핑 블로거다. ‘우리형’ ‘필조아’ 등의 별칭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캠퍼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포천시에서 열린 캠핑 블로거 전국대회를 직접 주도하기도 했다. 류 씨는 “캠핑을 하며 어울림의 기쁨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며 얻는 즐거움은 나와 아내의 삶에 있어 커다란 활력소”라며 “젊은 친구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많은 지혜를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자녀들이 해외 유학생활을 하고 있어 소비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특유의 넉넉한 인심 덕에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모인다. 류 씨는 “50대는 어려운 시기다. 사회적으로 손아랫사람이 많아져서 도움을 받기보다 베풀어야 할 지위에 있는 이가 많고, 은퇴를 앞두고 있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나이”라며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아웃도어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평=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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