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모르는 사람도 쉽게 봐”
탄허 스님(1913∼1983)은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능했던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이다.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의 아들인 탄허는 20대에 당대 고승들을 상대로 ‘화엄경’을 강의했고, 대학에서 노장(老莊)을 특강할 때는 10년도 더 연상인 함석헌과 양주동이 찾아 들을 정도의 ‘천재’ 대접을 받았다. 특히 화엄경에 정통했던 탄허 스님이 현토(懸吐·한문 구절 사이에 우리말 토를 붙이는 것)와 역해(譯解)를 단 ‘대방광 불화엄경-게송(偈頌)’(도서출판 교림)이 최근 출간됐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서우담(79·사진) 대표는 탄허의 제자이자 숙업의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전남대 법대 재학 시절인 21세 때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해 1976년 절을 떠날 때까지 탄허 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고, 환속한 뒤 탄허가 출가 전 낳았던 속가의 딸과 결혼했다. 서 대표는 탄허가 세상을 뜬 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화엄학연구소를 열고 탄허의 육필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았다. 조선의 유학자 서화담의 16대손인 서 대표 또한 유불선을 골고루 공부해 그의 연구소에는 저명한 학자·정치·법조인들이 드나들었다.
서 대표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불교의 진수가 화엄경이라면, 화엄경의 진수는 게송”이라고 했다. 한암 스님의 수제자였던 탄허는 스승의 유촉(遺囑·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을 받아 무려 6만여 장의 원고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해석하고 현토를 붙여 ‘신화엄경합론’ 23권을 펴냈다. 이번에 낸 책은 이 중 4784개의 게송을 출간한 것이다. 서 대표는 “한국 불교는 한자를 제대로 하는 스님이 드물다. 심지어 한자가 잘못된 화엄경이 버젓이 나돌기도 한다”고 애석해했다. 그는 “현토가 있고 없고, 어떤 현토가 달리느냐에 따라 뜻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탄허 스님이 현토를 단 화엄경은 각성, 무비, 통관, 성일 등 제자들이 주야로 8개월에 걸쳐 원고를 교정하고, 1977년 전국 강사 80여 명이 특강을 받으면서 오·탈자를 찾아 수정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약 1000쪽에 달하는 탄허의 현토 역해 ‘불화엄경-게송’에 이어 화엄경 40품, 59만여 자에 현토와 한글 음을 붙여 총 5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화엄경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 남녀노소 유·무식을 떠나 누구든 진리에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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