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석 정치부 차장

신출내기 정치부 기자였던 2001년 5월 이맘때쯤 한국 정치의 역동성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만났다. 집권 여당 새천년민주당에 불어닥친 정풍운동이었다. 초·재선 의원들이 김대중(DJ) 대통령의 친위부대 동교동계 구파와 그 좌장격인 권노갑 고문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비선 실세들이 당과 민심의 괴리를 낳았다는 이유에서다. 의원 워크숍뿐 아니라 DJ 면전에서까지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면서 권 고문은 결국 짐을 쌌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한국 주요 정당사상 최초로 상향식 민주주의 요소를 담은 대선후보 국민경선제가 도입됐다. 이는 2002년 ‘노무현 돌풍’으로, 결국에는 정권 재창출로 이어졌다.

당시 기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흔들림 없이 강고해 보이는 구조를 뚫고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여당은 대통령이 총재를 겸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 핵심 지도부도 사실상 총재가 임명했다. 당 3역, 당 5역에도 들지 못하는 총재특보단장이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보고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세로 여겨지기도 했다. 대통령 친위부대에 찍히면 국회의원 배지가 떨어지는 시절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 ‘큰 목소리’가 되고, 궁극적으로 당의 체질을 바꾸는 역사를 이룬 것이다.

최근 야당의 ‘드루킹 특검’ 요구를 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보며 십몇 년 전 민주당을 떠올리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당의 방침이 ‘특검 절대 불가’에서 ‘조건부 수용’으로 바뀌고, 그나마도 야당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4월 24∼26일)에서 응답자의 55%가 특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치가 나왔는데도 초·재선뿐 아니라 중진 의원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헌법 개정, 선거구제 개편, 주요 국정 현안 등 난제를 놓고 야당과 협상해야 할 여당이 청와대보다도 유연성이 떨어진다.

공천권을 틀어쥔 ‘총재 대통령’도, 눈으로 레이저빔을 쏘는 대통령도 없는 지금의 민주당에서 과연 무엇이 침묵을 강요하는가. 속속 드러나는 드루킹 일당의 행적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의 최측근 의원에게 인사청탁을 하고 협박도 서슴지 않았던 그들이다. ‘깨어 있는 당원’을 넘어 실체로서의 압력집단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다른 목소리’를 용납지 않는 교조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맷집은 자신 있는 나도 전화 폭탄, 문자 폭탄 맞아보니 움츠러들게 되더라”는 한 의원의 토로는 이런 압력집단이 비단 드루킹 일당만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죽하면 여당 원내대표가 특검 수용 카드를, 그것도 여러 조건이 달린 카드를 협상용으로 내면서 “정치생명을 걸었다”고까지 했을까.

2001년 정풍운동은 조직표를 지닌 소수가 당의 미래를 정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냐, 아니면 국민 일반과 함께 갈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후자를 선택해 성공했던 경험은 지금의 민주당에 이미 해답을 줬다. 민심(民心) 위에 당심(黨心), 심지어 그 위에 ‘문빠(극성 문재인 팬)’의 주장(빠心)이 있어선 곤란하다.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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