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자연이든, 신이든, 사람이든… 너는 기댈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그것이 자연이든, 신이든, 사람이든… 너는 기댈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싱그러운 5월 햇살과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을 감상하면서 라운드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오죽하면 골퍼들 사이에서 “5월 라운드는 보약 한 제보다 낫다”는 말이 나돌까.

30대 후반쯤 되는 선남선녀 두 쌍이 라운드하고 있었다. 파3홀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동반자가 캐디에게 물었다. “젊은 친구들이랑 함께 나가는 게 좋지요? 우리처럼 나이 든 골퍼들보다는….” 그러자 캐디는 정색하며 “아니에요, 영감님 같은 골퍼가 훨씬 좋아요”라고 답했다. 캐디는 “저희가 제일 싫어하는 골퍼가 누군지 아세요?”라고 반문하더니, “거리측정기 B브랜드, 옷부터 골프채까지 A브랜드로 치장한 골퍼예요”라고 설명했다.

캐디에 따르면 골프와 관련된 장비는 요즘 말로 ‘갑’이다. 프로 수준의 골프 장비와 의류를 장착한 이들이지만, 정작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에서 하는 짓은 ‘진상’급이란다.

드라이버 미스 샷을 하고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꼭 카트로 이동한단다. 공 옆에 가 거리측정기를 몇 번씩 찍어보고 나서, 캐디에게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거리를 알려주면 “내 기계랑 맞지 않는다”며 따진다는 것. 4명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 그 시간이면 이미 모두가 두 번째 샷을 마치고도 남는다.

더 웃긴 것은 거리측정기를 허리에 차고 한 번도 보지 않는 골퍼들이다. 페어웨이에서는 발에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처럼 꼼작 않은 채 클럽을 받고, 벙커 정리는 “TV에서 보니까 캐디가 해주던데…”라며 캐디에게 미룬다. 홀마다 멀리건을 본인들끼리 주고받는 것은 기본이고, 그린 바로 앞에서 거리와 그린 라인까지 묻는다. 볼 마크는 언감생심이고 퍼트 후에 볼이 안 들어가면 “언니야! 아니잖아”라고 따진다.

오히려 구력이 오래된 중견 골퍼는 룰과 에티켓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캐디가 딸 같다며 많이 챙겨준다. 이분들은 선배, 혹은 친구들로부터 골프와 함께 룰과 에티켓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러나 요즘 젊은 골퍼들은 룰과 에티켓을 가르침 받거나 가르칠 생각이 없다. 스크린에서 속성으로 스크린 룰과 스윙을 익힌 뒤에 바로 필드에 나오니 황당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단다. 티 꽂고, 공 놓고, 마크하고, 벙커 정리하고, 공 닦는 건 골퍼가 하는 것이다.

젊은 골퍼보다 영감님들이 더 낫다는 말이 없어지고 라운드가 보약 한 제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