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각자 자기가 사는 위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영토’에 살고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처럼 오늘날 지구의 땅은 대부분 영토화돼 있다. 이 개념을 조금 더 확대하면 영역이 된다. 이를 물리적 땅에 국한하지 않고 형이상학적 개념까지 확대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가톨릭 신도라면 그는 가톨릭이라는 종교 영역에서 사는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삼성의 직원이라면 그는 삼성 영역에서 사는 것이다. 영역개념은 현재의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고향이 있는바 그들은 평생 그 고향이라는 영역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 안에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역이고 마음의 영토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마음의 영토가 좁다고 말할 수 있는데 아직 자기 정신세계를 넓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영토란 점점 커지거나 반대로 줄어들기도 한다.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그 영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치매 환자의 경우 마음의 영토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교육을 받고 경험이 쌓이면서 영토가 넓어진다. 그 영토는 아이의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환경에 의해 커지는 정도가 달라진다. 천재나 영웅 등 남달리 훌륭한 사람은 마음의 영토가 아주 넓을 것이며,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성인은 그 영토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저마다 크기가 다른 마음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공부나 활동을 이어간다면 영토는 계속 넓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제자리에서 더 이상 커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잊어지는 것도 있으니 줄어드는 부분도 있다.

크기뿐 아니라 그 영토의 질도 사람마다 각각일 수밖에 없다. 위대한 정치가는 전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는 거대한 영토가 있을 것이며 천재적 과학자는 자연의 신비를 밝혀 나가는 빛나는 영토가 있을 것이다. 평생 범죄나 일삼는 사람은 그 영토가 보잘것없을 것이고 수도에 전념하는 도인의 정신세계(영토)는 광활하고 깨끗할 것이다. 마음의 영토란 그 사람의 정체성의 양과 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영토가 넓을수록 그 안에 많은 것을 담아 놓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의 영토는 바깥 세계의 국가 영토와 완전히 닮았다. 마음의 영토도 국가의 영토처럼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유도한다. 마음의 영토 안 요소들은 모자이크처럼 각각으로 분리돼 있어 각각의 운명을 갖고 있다. 한 나라에 사는 많은 국민이 저마다의 운명을 갖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마음의 영토를 넓히거나 그 속에 있는 사물을 값지게 만드는 행위이다. 하나의 틀 속에 큰 변화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운명의 변화는 없을 것이고 있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김승호 주역학자
김승호 주역학자
커다란 행운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영토가 얼마나 넓은지 살펴봐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큰 행운이 일어날 것인지 봐야 한다. 막연히 행운을 기다리는 것은 사막에서 비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행운이란 무작위로 아무 곳에서나 일어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작은 행운 정도야 우연히 발생할 수 있지만 큰 행운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마음의 영토가 넓은 사람에게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 넓은 영토 안에서 무엇이 돌출해 크게 발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성인이 날마다 새로워지라고 한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로 나아가 보라는 뜻이다.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왔으며 그 안에서 위대한 운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를 본받아 우리는 마음의 영토를 한없이 넓혀야 할 것인바, 그것은 다름 아닌 반성과 경험의 확장이다.

주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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