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북한 핵무기는 ‘지옥에서 나온 문제’를 들추는 진입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 이후 맨해튼에 언제 핵무기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핵정책을 스리-노(3No) 표현으로 요약했다. 허술한 핵무기 관리의 불용과 미래 핵무기 씨앗의 불용 그리고 새로운 핵보유국의 불용이었다. 핵 테러리즘에서 그는 “북한은 세 번째 불용에 심각하게 도전하고 있다”고 썼다. 그때가 2005년이다. 13년이 흘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앞두고 있다. 반추하면 미국은 글로벌 핵 정책 운용에서 완전하게 실패한 셈이다.
핵확산은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무위로 끝나면 미국의 글로벌 핵 통제력은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북한에 꼼짝 못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반미국가들은 강렬한 핵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핵협정 탈퇴의 뺨을 맞은 이란이 1순위다. 그렇다고 영변 핵시설에 바로 폭탄을 투하하기도 어렵다. 미국에 이를 갈고 있는 국제테러단체들도 있다. 트럭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들, 뉴욕항으로 몰래 반입되는 마약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미국이 핵무기가 소포장으로 쪼개져 반입되는 최악의 상황을 100% 차단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미·북 정상회담은 그래서 개최까지 가면 불안한 타협에 이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북한 핵 동결 또는 핵 봉쇄는 엔텔레케이아, 잠재적 현실태의 요소를 갖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담화에서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다가오는 조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골치 아프게 하지 않을 테니 즉각적이고 완전한 비핵화 소리는 걷어치우라는 압박이다. 비핵화 선언을 해도 언제까지라고 기한을 못 박지 말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북한의 엉덩이를 걷어찰지 말지는 미국의 몫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은 기본적으로 미국 이익 우선주의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를 막는 것”이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13일 폭스뉴스 인터뷰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일성주의로 무장한 북한은 노동당이 통제하는 나라다. 장마당이 늘어났지만, 엘리트 집단을 중심으로 당 중앙에서 재화와 물자가 배분되는 구조다. 핵무기 몇 기를 해체하는 기만적 비핵화로 경제 지원이 이뤄지면 결실은 개인이 아닌 당이 차지한다. 개성공단이 수십 개 더 설립되더라도 임금착취형 용역기업국가라는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의 현실 인식은 날카롭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15일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외부와의 거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뒤집으면 개방·개혁이 이뤄지면 북한은 체제 유지가 어렵다는 말이다. 북한을 움켜쥐고 있는 당과 군부의 엘리트 집단에 개방·개혁은 집단자살을 일컫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독재국가 지원으로 유지되는 안정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은 돈을 주고 산, 공포에 대한 굴복에 불과하다. 북한 체제 모순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공동 번영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j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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