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피리 부는 사나이(원제: 하멜른의 쥐잡이)’는 1284년 6월 26일 독일의 하멜른에 실제로 어린이 130명이 사라졌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 도시에는 지금도 당시를 기억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약속한 슬픔의 거리가 있다. 이 일은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아동 납치 사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동화 ‘헌터 걸’의 김혜정 작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그 추종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아동을 괴롭히고 어른들의 욕심을 위해 희생시켜 왔다면, 그리고 아직도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그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상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헌터 걸’의 주인공 이강지는 열두 살의 학교 양궁선수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작은 식당을 하는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강지를 찾아와 헌터 걸의 운명을 이어받아야 하니 이제부터 수련에 들어가자고 말한다. 외할머니도, 엄마도, 양궁선수였던 것으로만 알았던 강지는 이들이 모두 수백 년간 활동해온 헌터 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헌터 걸은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어른을 찾아 물리치는 일을 하는데 어린이가 그 일을 맡아야 하는 이유는 어른의 눈에 이런 악당은 잘 보이지 않고 대부분 어른은 이익에 매달려 그 악당에게 조종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강지는 갈등 끝에 이 일을 맡기로 하고 헌터 걸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강지와 친구들이 열광하는 ‘거울 여신’이라는 인터넷 스타를 둘러싼 비밀에 휘말리게 된다.
‘하이킹 걸즈’ ‘닌자 걸스’ 등 경쾌한 리듬감의 청소년 소설을 내놓았던 김혜정 작가는 ‘헌터 걸’로 여성 어린이가 주인공인 신선한 모험 서사에 도전한다. 헌터 걸의 주문은 ‘빌 슈츤 운스’, ‘우리가 우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이 주문은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어린이가 비극을 겪고 마는 이 세계의 어린이들이 동화를 통해서 외치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강지는 랜선 위의 악당들과 싸우는 디지털 세대이지만 우리 여성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다루는 무기인 ‘활’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적 영웅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취소 없고, 삭제 없고, 두려움 없이 싸우는 단호한 여성 전사다. 그동안 아무도 소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사회에서 헌터 걸의 탄생은 통쾌하고 의미심장하다.
만화가 스토리의 일부를 담당하는 구성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도와준다. 이어지는 시리즈를 두근거리며 기대한다. 184쪽, 1만2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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