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신을 찾아서 / 김신명숙 지음 / 판미동
최초 神은 女… 생명력의 원천
크레타섬 여신 순례서 시작해
한국적 영성에서 뿌리 찾아
성모천왕·마고할미·바리공주
경주·제주·지리산 신앙 풀어내
여성학과 신학은 익숙해도 ‘여신학’이라니. 여신학의 역사·학술적 배경에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1921∼1994)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지중해 주변 유고 및 마케도니아 지역 신석기문화 발굴에 참여하면서 각종 고대 유물 속에서 선사시대 여신문명의 존재를 밝혀냈다.
우리가 배운 기껏 4000년의 세월을 넘어, 최소 2만5000년 동안 지속된 정치·사회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양성이 평등하고 평화로웠던 모계 사회의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인류문명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김부타스의 연구는 미국인 종교사학자이자 신학자인 캐럴 크리스트에 의해 ‘여신학’이라는 학문으로 체계화돼 이어지고 있다. 김신명숙의 이번 책 서두에도 ‘축하의 글’을 쓴 크리스트는 여신학의 대모, 여신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며, 지난 25년간 ‘크레타 여신 순례’ 등 여신운동을 이끌고 있다. 여신을 중심상징으로 채택해 대안적 영성을 추구하는 이 같은 여신운동은 1970년대 초 제2물결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 확산해왔다. 김신명숙 역시 2009년 2주간의 유럽 여신 순례에 참가해 그 내용을 앞의 논문은 물론 이번 책에도 주요하게 다룬다. 이 책은 여신학을 국내에서 처음 대중적으로 풀어냈을뿐더러 우리 문화의 뿌리에서 여신 영성을 찾아 드러낸 첫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가 박사논문을 쓴 뒤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운동을 통해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는 성과는 얻었으나,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만은 없다. 기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감시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서로 연대해 힐링(healing)하고 임파워먼트(empowerment·여성의 내적 힘의 증진)하는 새로운 이슈가 절실하다”고 했던 말은 여신 영성운동과 관련된 언급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로 세상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스트 ‘투사’가 됐지만, 10대부터 관심을 가진 영적인 문제와 페미니즘은 통합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는 여신학에 눈뜨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와 페미니즘이 하나로 통합되면서…지나온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되는…환희를 느꼈다”고 말한다. 크리스트도 ‘축하의 글’에서 “선사시대 여신의 발견은 학문적 추구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제적 문화와 종교에서 자란 여성들에게 심대하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모든 사람은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그 엄연한 사실에 여신의 뿌리가 있다. 여신운동은 개인의 영적인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함께 추구한다. 영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여신운동은 종교라기보다 우리 존재가 자연과 우주의 뿌리와 맞닿아 있음을 느끼며 그래서 신성하고 행복한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원래 종교의 시작은 이와 같았지만, 남성 권력과 손을 잡고 제도화하며 여신을 살해했다.
저자는 그리스의 크레타섬 여신 순례를 비롯해 제주도·지리산·경주 등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성모천왕, 마고할미,바리공주 등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여신신앙을 읽어 내고 있다. 592쪽, 1만95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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