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 감독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198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대중의 기호와 동떨어져 있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아야 했다. 1985년 영화법이 개정되며 영화제작의 자유화가 실현되는 듯했지만 이후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빚어진 미국영화 직배는 한국영화계를 더욱 위축시켰다.

장길수 감독은 1980년대 한국인의 삶 속에 들어온 미국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재조명하며 주목받았다. 1985년 데뷔작인 ‘밤의 열기 속으로’는 미군부대 기지촌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방황과 일탈, 좌절을 그렸다. 이 영화로 장 감독은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88년 ‘아메리카, 아메리카’, 1993년 ‘웨스턴 애비뉴’에서는 낯선 타국에서 받아야 했던 차별과 편견으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한국인의 고단한 삶을 선명하게 짚어냈다. 1990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그는 한국인 미국 이민자들이 겪는 애환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짚어내며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었다. 1991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는 미군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국인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그는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새로운 주자 역할을 했다. 장길수를 비롯해 이명세, 박광수, 신승수 등 창의력이 왕성하고 의욕에 찬 당시 30대 감독들은 신선한 감각과 개성 있는 영상을 앞세우며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그리고 이 시기 활동한 젊은 감독들은 기성세대들과의 세대교체를 촉진시켰다. 특히 장 감독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흥행과 함께 한국영화의 국제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그의 시도는 한국영화 제작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1990년대에 역량 있는 후배 감독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장 감독은 문학 작품의 해석 능력 또한 탁월해 각색 작업에 대부분 직접 참여했다.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면 실패한다는 우려와 달리, 그의 영화는 대중에게 소구하는 재미를 담아내면서도 예술적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덕분에‘추락하는…’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등 7개 부문 수상과 청룡영화상 각본상 및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청룡영화상 각본상, ‘은마는…’은 춘사영화상 각본상과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실락원’ ‘초승달과 밤배’ 등도 문학 작품을 효과적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5년부터 줄곧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해 왔던 그는 최근 배우 신성일과 함께 차기작을 기획하는 등 현역 감독으로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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