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의 공방으로 표류하던 추가경정예산(추경·追更)안이 이르면 18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추경안의 국회 상임위 상정까지 걸린 기간은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국회 상임위에 넘겨지는 데 걸린 기간은 2013년 1일, 2015년 3일, 2016년 8일 걸렸지만, 지난해에는 27일 소요됐다. 올해는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무려 40일이나 걸렸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늦게라도 국회 상임위에서 심의되고, 처리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추경안 처리 과정은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우선, 추경안 편성 요건에 부합하는지가 문제다. 현행 국가재정법(제89조)은 추경안 편성 요건에 대해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 관계의 변화, 경제 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대량 실업에 대한 우려’를 추경안 편성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가 추경안 편성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대량 실업에 대한 우려가 과연 실제 통계로 뒷받침되는지 논란이 많다. 통계청이 지난 16일 내놓은 ‘고용동향’(2018년 4월)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4.1%다. 경제학계에서는 실업률이 3∼4%일 경우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로 본다. 올해 4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이 10.7%에 달하지만, 청년층 실업률이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악화한 것도 아니고,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추경안을 편성할 만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청년층 실업률이 급등한 것이라면, 추경안이 아니라 본예산에 반영하는 게 재정 운용의 상식이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추경안 편성 요건을 고치든가, 아니면 이런 추경안 편성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편성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의 추경안 심의 과정은 더욱 가관이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 14일 오후 파행 42일 만에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런데 불과 4일 만에 추경안 심의를 끝내고 18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여·야가 합의하면, 추경안 심의 기간이 다소 늘 수도 있겠지만, 부실 졸속 심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올해 추경안에는 전북 군산시, 경남 통영시, 울산 등 고용·산업위기 지역 8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대책 등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사업도 많다. 그러나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내일채움공제 등 그동안 예산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실효성도 의심받아온 사업도 대거 포함돼 있다. 재정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다. 따라서 이런 사업에 예산을 쓰는 게 맞는지, 실효성은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계에서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업을 단 4일 만에 제대로 심의해서 통과시키는 것은 신(神)이라도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럴 바에는 국회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심의하도록 강제성이라도 부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hae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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