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권창륜 서예가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연구실인 한국서예학술원에서 직접 글씨를 쓰며 서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벽에 전서체로 쓰인 ‘龍盤(용반)’은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초정 권창륜 서예가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연구실인 한국서예학술원에서 직접 글씨를 쓰며 서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벽에 전서체로 쓰인 ‘龍盤(용반)’은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 일중서예상 大賞 권창륜

흉내내지 말란 스승 가르침에
나만의 서체 찾으려 계속 노력

평면적인 글씨 일으켜 세워
글자에 입체감·조형미 부여

캘리그래피는 가독성 떨어져
법식 엄격한 서예와는 달라


“‘스승의 정신은 배워도 스승 글씨를 흉내 내서는 안 된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서 체본(體本·서예 학습에서 본보기가 되는 글씨본)을 내려주지 않으셨어요. 그 가르침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만의 서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75) 서예가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진행된 일중서예상 제6회 대상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21∼2006)은 동생인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1927∼2007)과 함께 20세기 한국 서예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중과 여초의 직계 제자가 바로 초정이다. 일중의 수제자였던 초정은 일중과 여초의 문하를 오가며 글을 배워 스승들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우뚝 섰다.

1943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한 초정은 대학 시절에 일중 김충현에게 글씨를 배워 국전 입선 10회, 특선 4회의 기록을 세웠고, 국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한국서예가협회 회장직도 역임했다.

그는 5서(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다 섭렵하고 사군자, 문인화, 전각 등 다양한 분야에 능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청와대 인수문과 춘추관, 운현궁의 현판도 그가 썼다.

“붓이 날아다니는 초서와 행서를 좋아하지만 상형문자에 바탕을 둔 전서(篆書)를 특히 좋아했어요. 전서를 쓰고, 보고 있으면 그림과 글자가 하나라는 서화동원(書畵同源), 이곡동공(異曲同工)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죠.”

전서의 하나인 금문체(金文體·청동기에 주조되거나 새겨진 문자 서체) 필법으로 쓰인 ‘황고(荒古)’란 글자에는 대자연 속의 호연지기가 담겨 있다. 실제 이 글씨는 백두산 천문봉에 올라 쓴 것이라고 한다.

초정의 앞으로 계획은 스승인 일중의 교훈을 되새겨 자신만의 글자체를 계속 진력해 찾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서예를 통해 ‘문자 미(美)’의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다.

“과구(과臼·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서체)를 넘어서기 위해 평생 노력했습니다. 요즘 시도 중인 것으로 글자에 입체감을 주기 위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평면에 누워 있는 글씨를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죠. 범 ‘호(虎)’자 글자에서 포효하는 호랑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글자에 조형미를 부여해 ‘문자 미(美)’를 극대화하고 싶은 것이죠. 서예를 멀리하는 현대인들도 그 같은 글자를 만나면 충분히 미적 감흥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초정은 자신의 조형미가 가미된 서체를 요즘 유행하는 손글씨체인 캘리그래피와는 엄격히 구분했다.

“서예는 점과 획이 가독성을 지니고 있어요. 아무리 흘려 쓴 초서체라도 자세히 보면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있죠. 그러나 캘리그래피는 가독성이 약해요. 글자가 읽기 쉽게 정확히 쓰였는지보다 이쁜 모양만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서예 쪽에서는 캘리그래피를 ‘먹의 희롱’이라고도 합니다. 서예는 법식이 엄격한 글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움뿐 아니라 사물의 질서와 본질도 드러내 보여줄 수 있죠.”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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