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위원

한국어는 같은 색깔이라도 농도(濃度) 등의 미세한 차이를 담은 어휘가 풍부하다. 백색이나 그런 색을 띤 상태에 대한 형용사만 해도 어감을 달리하는 표현이 많다. 하얗다, 새하얗다, 허옇다, 허여스름하다, 허여스레하다, 희다, 희끄무레하다, 부옇다, 뿌옇다, 희뿌옇다 등. 소설가 한강(48)은 소설 ‘흰’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고 밝혔다. 2016년 처음 출간할 당시에는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며 따로 ‘작가의 말’을 싣지 않았던 그는 “이제 2년이 지나, 비로소 어떤 말을 조용히 덧붙여 쓰고 싶다는―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한 말이다.

그는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며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하고 처음 한 일이 목록 만들기였다고 한다. 배내옷, 달떡, 안개, 젖, 초, 성에, 서리, 백발, 구름, 백열전구, 흰나비, 쌀밥, 소복, 연기, 눈, 진눈깨비, 눈보라, 만년설, 파도, 소금, 달, 입김, 손수건, 은하수, 백목련 등. 그 하나하나에 대해 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짧은 이야기 65편의 초고(草稿)를 이듬해에 완성한 뒤, 더 다듬어서 묶어낸 책이 ‘흰’이다. 이런 대목들이 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삶은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가 “궁극적으론 소설이지만, 동시에 픽션·에세이·시(詩)의 경계에 있는, 분류에 저항하는 실험적 형식”이라고 말하는 ‘흰’이 세계 3대 문학상에 드는 영국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22일 수상 여부가 발표된다. 맨부커상운영위원회는 “애도와 부활과 인간 영혼의 강인함에 대한 작품으로, 삶의 연약함·아름다움·기묘함을 탐구한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윤동주 시인의 맑고 순수한 정신세계를 동경한다”고도 하는 그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아시아 작가 최초로 2016년에 받은 상을 또 받는 큰 경사를 기대한다. 한국 문학의 세계 속 위상도 더 높아지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