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콘, 엔진음·음향 등
車 사운드기술 집중연구
차량마다 ‘독특한 음색’
제조사의 자존심과 비유
사내 개방형 공모 통해
임직원에 창업기회 제공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총 38개 사내 벤처 육성
직원들에 혁신문화 전파
기업가 정신도 고취시켜
지난 17일 경기 의왕시 현대차 의왕연구소 7층에 마련된 현대기아차 전략기술본부 ‘H스타트업팀’. 현대차 사내벤처의 하나인 ‘아스콘 플러스’의 이상일(47) 책임연구원과 정우철(42) 책임연구원이 손바닥만 한 부품들을 손에 들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스콘 플러스는 ‘Automotive Sound Control(자동차 사운드 제어 기술)’의 약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자동차 엔진음, 배기음, 음향 등 차량에서 나는 모든 사운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동차 소리 디자이너’인 셈이다.
“스포츠카나 슈퍼카 등 비싼 차에서만 즐길 수 있는 사운드를 일반차량에서도 추가 비용 없이 운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만든 전자식 제너레이터는 이미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고성능 차 벨로스터N에 장착돼 자동차 엔진음을 운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차량 앞유리가 스피커의 진동판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상일 책임연구원은 “저희가 만든 기술이 세계 최초는 아니다”면서도 “경쟁차종에 있는 부품을 내재(內在)화해 보려는 시도로 4년 연구 끝에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드라이빙의 맛을 느껴 보려는 운전자들이 늘면서 차량 사운드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은 차량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어떻게 연산해서 구동할 것인지 로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미 완성된 차량에 자신들의 장치를 장착하는 이른바 ‘애프터 마케팅’도 타깃이다. “쉽게 말하면 아반떼 스포츠를 포르쉐의 느낌으로 만든다고 할까요.”
정우철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그는 이어 “차량 사운드는 운전자마다 호불호가 다르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라며 “차량마다 음색이 모두 다르고, 그 차에서만 나는 독특한 소리, 이른바 사운드 아이덴티티(Identity)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자동차회사들의 자부심으로까지 비유된다”고 설명했다.
아스콘 플러스 팀원들은 현대차 직원 신분이기 때문에 현대차에 기여하고 싶다는 첫 번째 포부를 밝혔다. 분사(스핀오프) 이후에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사업을 해보는 것이 그다음 목표다. 이들은 차선 이탈 시 시트에 일어나는 진동과 촉각으로 위험을 알리는 진동 우퍼 시트 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대기업 부서에 소속되면 조직원으로 재직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사내벤처로 독립하니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깊이 몰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회사 내부에 혁신 문화를 전파하고, 임직원의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사내 스타트업’ 제도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사내 스타트업 육성은 2000년에 처음 시작됐다. 현재 사내 스타트업 제도의 전신인 벤처플라자를 2000년 출범하면서 사내벤처 육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국내 기업으로는 드물게 20년 가까이 사내벤처 육성을 위한 제도적 플랫폼을 유지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미래 기술과 신사업 발굴을 전담하는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가 신설돼 본부 산하 미래혁신기술센터에서 사내 스타트업 육성을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사내 스타트업 제도는 그룹 내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개방형 공모 방식을 통해 임직원 누구에게나 창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혁신적인 기술개발이나 사업화하기 좋은 아이템을 공모, 선정된 사내벤처는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추진한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총 38개의 사내벤처를 육성했고,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품을 떠나 분사 창업에 성공한 기업도 9곳에 이른다. 국내 벤처기업의 성공률이 1~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육성 중인 사내벤처는 총 10곳. 대부분 앞서 분사한 사내벤처를 롤모델로 삼아 분사와 창업을 목표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초기 사내벤처들이 주로 자동차 부품의 국산화에 중점을 둔 반면, 최근에는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친환경차 등 미래지향적인 기술들까지 제안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사내벤처에서 진행하는 연구 범위가 자동차 분야에 치우쳤으나, 최근엔 모빌리티 서비스, 소재 개발, 유아용 안전시트 등 이종 산업 분야의 아이템을 활용하거나 개발하는 데까지 확장됐다.
임직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18년도 사내 스타트업 공모에 접수된 아이디어가 200여 건에 달했으며, 현재 심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의왕 =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제작후원 :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이마트,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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