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3일 “특정 연도를 목표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기보다는 신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편 것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시점에서 의미심장하다.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린다는 문재인 정부 공약에 경제정책 수장이 제동을 건 모습이다. 그가 신축적 고려 대상으로 고용·임금에 미치는 영향과 시장·사업주의 수용성을 꼽은 것도 기존 문 정부 시각과 사뭇 다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고, 사업주 부담은 재정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인식을 보여왔다. 김 부총리는 이런 반(反)시장적 접근에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는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는 산입범위 조정, 최저임금위원회에선 인상률을 다루지만 이해집단의 주장이 갈려 진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올해 16.4% 올린 최저임금 영향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먼저다. 1차 영향권의 도소매·음식숙박업 취업자는 5개월째 큰 폭으로 줄었다. 사업주가 감원·근로시간 단축으로 대응하면서 저임금 근로자 소득이 나아진 흔적도 없다. 3조 원 혈세까지 투입했는데 박수는커녕 비명만 들리는 현실이다. 실지급액에 근접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시장이 수용할 적정 수준을 따져봐야 할 때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정치권과 전문가 그룹의 이성적 타협이 긴요하다.

정부 내에서 경기 논쟁이 붙을 만큼 최근 생산·투자·고용 지표는 위태로운 수준이다. 문 정부의 향후 경제정책 운용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뜻이다. 집권 3년 차인 내년 또다시 최저임금이 고율 인상되면 고용 현장은 더 얼어붙고, 재정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마침 문 정부가 새로운 돌파구로 혁신성장 쪽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다. 규제 혁파로 기업 활력을 높여야 할 판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화 등 반시장 정책으로 굴레를 씌워선 성과가 날 리 없다.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이 반시장 정책 전반을 시정(是正)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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