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 에릭 와이너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더러운 아테네·역병 돈 피렌체
우중충한 에든버러 등 7개 도시

공적 참여로 ‘천재 창조성’ 키워
철학·과학·예술의 황금기 일궈


“한 아이를 길러내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 도시가 필요하다.”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은 저널리스트 겸 작가, 에릭 와이너가 ‘천재들의 일곱 도시’를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이 일곱 도시는 서양 문명의 출발지 고대 아테네, 10∼13세기 과학기술을 선도한 중국 송나라 수도 항저우(杭州), 르네상스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 계몽시대 근대 학문의 기틀을 다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인도 콜카타, 고전음악과 정신분석학의 도시 빈, 그리고 정보기술(IT) 혁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다. 그는 18∼19세기 잉글랜드 젠트리 계급 청년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외국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특정 시기에 천재들이 대거 등장했던 이들 도시에서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의 풍경을 되살려내며, 천재성의 비밀을 파고든다. 책은 이 여행의 기록이자, 성찰이자, 결과이다.

여행의 시작은 천재는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흔한 관심이었다. 다만 그는 천재를 연구할 때 일반적으로 파고드는 ‘내면’이 아니라 ‘환경’에 주목했다. 이 환경도 한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부모나 주변 환경이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도시에서 천재들을 만들어내는 들끓는 전체 문화이다.

그가 천재 도시를 돌아보게 된 계기는 심리학자 키스 사이먼턴 때문이었다. ‘천재학’에 넘치는 열정을 지닌 사이먼턴은 역사적으로 천재는 여기서 한 명, 저기서 한 명 하는 식이 아니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무리 지어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종의 시대적 ‘군집’이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45년 아테네에 등장한 철학자들, 1500년 피렌체에서 활동한 예술가들, 16세기 송나라 항저우의 지식인들, 현대 실리콘밸리의 혁명가들이다.

저자는 이들 도시에서 말 그대로 ‘도약’이 이뤄진 결과로 봤다. 천재는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점진적 혁신이 아니라 도약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일곱 도시의 황금기는 대부분 수십 년, 길어야 반세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찰나에 불과한 그 짧은 순간에 천재들이 만든 성과들은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철학이 그렇고, 항저우의 자기 나침반, 피렌체의 예술품과 콜카타의 문학 작품, 에든버러 황금기의 화학, 경제학, 의학이 그렇다.

이렇게 현재의 도시에서 영광의 역사를 살핀 끝에 저자는 천재의 장소가 결코 낙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천재들이란 새롭고 기발한 방식으로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며 탄생하기 마련인데, 낙원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고 더러운 아테네, 역병으로 사람이 죽어간 피렌체, 우중충한 에든버러, 영국과 인도의 문화가 충돌한 콜카타와 이민자들이 몰려든 빈에서 창조적 천재들이 등장했다. 인간은 제약을 맞닥뜨릴 때, 어느 정도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서 창조적 에너지가 분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 창조적 장소의 특징을 3D로 봤다. 무질서(Disorder), 다양성 (Diversity), 감식안(Discernment). 현 상태를 뒤흔들고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무질서, 민족의 다양성과 관점의 다양성,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간과되는 감식안이다.

여행의 끝에 이르러 천재에 대한 오랜 통념을 버리라고 제안한다. 창조성은 흔히 생각하듯 개인의 사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재적 창조성은 오히려 공적인 참여에 더 가깝다. “창조성은 공공선이며, 관계이다. 사람과 장소의 교차로에서 펼쳐지는 관계. 이 교차로는 여느 교차로처럼 위험하고 인정사정없는 장소다. 주의를 기울이고 걸음을 늦추고 저기 바보들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교차로는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고대 아테네든, 서니베일의 상점가든, 초라한 교차로야말로 진정한 게니우스 로키(genius loci)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사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 창의성이 도약할 수 있는 곳인가. 512쪽, 1만85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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