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19번 국도변에 소박한 야구장이 하나 있다. 강변에다 기둥을 박고 그물을 쳐서 홈베이스를 만들고, 문 닫은 장례식장에서 뜯어온 조립식 건물로 더그아웃을 만든 이 야구장은 ‘어쭈구리’ 야구단의 홈그라운드다.
어쭈구리 야구단은 경남 하동의 한 고물상 주인이 친구들을 불러 모아 창단한 사회인 야구팀. 책은 지방 소도시의 사회인 야구단 구성원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0년 창단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은 한가득이지만, 뭐 그래 봐야 별반 관심 없는 사회인 야구단 이야기니 기가 막힌 전략 전술 얘기나 손에 땀을 쥐는 승부 따위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야구 얘기를 하고 있으나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아니 어찌 보면 별 볼 일 없는 서민들의 삶이다.
야구단에는 제철소에서 CCTV 유지 보수 일을 하는 선수도 있고, 크레인을 타고 작업하는 선수도 있다. 읍내 유일의 남자 미용사도 있으며, 포클레인 기사도 있다. 읍내의 학원 원장도, 닭집 아들도 선수다. 그렇다고 무슨 외인구단처럼 엄청난 기량을 숨기고 찾아온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승부의 경기도 없다. 반전도, 복선도 없다. 소박한 일상을 사는, 저자 표현을 빌리자면 시시하고 지질하며 사연 많고 고달픈 인생들의 얘기다. 인생역전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승진의 기회조차 없는 직업의 이들이 야구가 없었더라면 승리하고 꿈꾸고 도전하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어쭈구리 야구단의 정규 선수는 아니다. 시인이며 여성이고, 어쭈구리 야구단의 명예회원이다. 그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불러내 책 안에 캐리커처로 세워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낸다. 파란만장한 과거 얘기도 있고,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도 있다. 간결하고 압축적인 시인의 문장으로 전하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그대로 짤막한 한 편의 ‘인생극장’이다.
책 마지막 쪽에는 야구단의 한 선수가 쓴 기사가 덧붙여 있다. 지난 2017년 11월 하동의 어쭈구리팀이 섬진강변에서 한국 유일의 시인 야구팀인 ‘사무사’와 벌인 경기 소식을 담은 기사다. 고물상에서 시작한 사회인 야구단이 시인과 평론가들로 구성된 시인 야구단과 만나 벌인 시합. 경기 소식을 담은 기사인데도 기사에서 승패는 관심 밖이다. 대신 사무사팀의 선수들이 하동을 소재로 시를 쓰고 싶다고 한 얘기와 시인 야구팀을 후원하는 출판사가 고물상 야구단에 시집과 책 50권을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앞선다. 상상해보라. 섬진강변에서 남자 미용사, 포클레인 기사, 닭집 아들이 한편이 돼 시인 야구단과 야구시합을 벌이는 장면을…. 여기에 시인들이 시합에 앞서 시집 50권을 상대편 선수에게 선물하는 장면까지 보태니 한 편의 비현실적인 동화로 읽힌다. 237쪽, 1만50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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