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의 여인들이 즐겨 보던 낙선재본 한글 소설 ‘천수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한글소설 ‘천수석’의 女주인공 이혼 후 첫사랑 보려고 황궁行 황제 총애받자 배신·암투 몰두 나라 망하고 본인도 최후 맞아
남녀가 처음 만나 서로 느끼는 첫인상은 상대방에 대한 직관적인 포착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고들 한다. 게다가 첫인상은 상대적이지 않아서 나와 상대의 느낌이 전혀 다른 경우도 많다.
중국 당나라, 매력적인 여성 이초혜는 명문거족의 엄친아 위보형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위보형을 향한 흠모의 정이 솟아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정도인 데 반해, 위보형은 이초혜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그녀가 방탕한 여성이고 자신에게도 해를 끼칠 여성으로 느꼈다. 첫인상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초혜에게 기회가 왔다. 매파들이 위보형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돈에 눈이 먼 매파들의 사기극이었다. 이초혜는 뜬금없는 남자 간옥지를 위보형으로 오해하고, 간옥지 역시 이초혜를 자신이 흠모하던 옥영이라는 여인으로 오해한 채, 관계를 맺고 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결국 이초혜의 집안에서는 그녀를 간옥지와 억지 결혼을 시켜버렸다.
“부모님께서 저의 남편감을 구하셨지만 제 마음에 맞는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위보형을 보자마자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얽혀서 종신토록 따를 것을 맹세하고,…저는 하늘의 신선과 같은 위보형을 바라다가 간옥지 같은 땅 위 버러지를 만난 것을 원망하였고….”(소설 ‘천수석(泉水石)’ 중.)
조선시대 왕실의 여인들이 즐겨 보던 한글 소설 ‘천수석’은 당나라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강렬한 사랑으로 파멸에 이르는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이초혜의 결혼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불행은 불행을 낳고,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그녀의 남편 간옥지 역시 그녀가 곱지 않을 터. 이초혜를 음란하다며 미워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수록, 그녀는 첫눈에 반했던 위보형이 떠올랐고 참지 못한 그녀는 결국 그를 유혹하여 음행을 저지르게 된다. 한번 시작된 외도는 브레이크 없이 내달려 주체할 수 없는 강박적인 모습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그녀의 음행은 명백한 이혼사유로 인정되었다.
이혼 후 혼자가 된 이초혜는 황비의 도움을 받아 위보형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황궁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초혜는 특유의 매력으로 황제의 사랑을 얻으면서 권력의 중심에 선다. 궁중 생활에서 가장 의지했던 황비를 배신하고, 마치 태후가 된 것처럼 행동하며 그동안 자신을 모욕하고 무시했던 세력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위보형에 대한 사랑이 권력 암투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황제를 유혹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한 이초혜는 권력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잘못된 권력의 마지막은 파국과 맞닿는다. 그 끝은 곧 내리막을 의미함에도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결국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황제로 인해 국가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이초혜는 황제를 유혹하여 미혹에 빠지게 하고 정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해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파국을 맞고 만다. 모든 권력을 쥐었던 그녀는 죽음 앞에서 최후의 진술을 하며 뜻밖에 첫눈에 반했던, 첫사랑 위보형을 말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짚어 나간다.
황제의 사랑, 권력,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첫눈에 반했던 사랑을 붙잡았지만, 허망하게 흩어진 채 결국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끝에 잔인한 죽음이 그녀를 덮쳤다. 이초혜가 사랑이라 믿었던 욕망은 부딪히고 깨져 왜곡되어 가면서 권력욕과 복수로 자신을 무너트렸다.
조선 왕실의 여성들은 ‘천수석’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녀들이 실제 왕실 생활을 하며 겪었던 ‘첫눈에 반한’ 누군가에 대한 마음을 다시 확인하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