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세종문화회관 40년 공연
‘디바&디보’ 주인공 ‘디바’役
‘디보’役 25년 친구 佛 알라냐
“공연곡 대부분 한국에선 첫 선”
“지금까진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나 자신과 타협하는 게 더 중요”
“더이상 가슴 뛰지않는 날 오면
언제든지 무대서 내려올 준비”
“아직도 눈앞에 뭔가 새로운 게 있으면 몸 안의 세포들이 난리를 쳐요. 도전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빛나는 눈으로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말하는 조수미(56·사진)는 데뷔 32년째를 맞은 지금 여전히 성장 중이다. 지난해 숨진 전설적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꼭 해보라”고 조언했던 러시아 음악에서부터 북한에서의 공연까지, 그녀의 위시 리스트는 꽉 채워져 있다. 지난 23일 경기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조수미는 ‘슈퍼 수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강행군을 소화한 후에도 꿈을 이야기할 때는 설렌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필리핀을 거쳐 이날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 연이어 이곳의 개관 20주년 특별공연 리허설까지 마친 상태였다. 힘든 기색 없이 “바쁜 일정 덕에 많이 보고 배워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86년 이탈리아 베르디 극장에서 데뷔한 후 세계 최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소프라노 조수미. “신이 내린 목소리” “1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소리”라는 극찬은 1988년 전설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제 그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것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많은 사람이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만 그가 내놓은 답은 명쾌했다. “데뷔한 지 32년째이지만 한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늘 새로운 레퍼토리나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했어요. 제가 얼마나 관객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매 순간 확인받는 공연들을 해왔기 때문에 조수미라는 이름에 여전히 신뢰를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세계 어느 무대보다 한국 공연이 중요하다”는 조수미의 이번 내한 기간 하이라이트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오는 31일 선보이는 조수미와 로베르토 알라냐의 ‘디바&디보’다. 조수미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테너 알라냐는 1992년 런던 코번트가든에서 같은 시기에 데뷔한 후 25년간 인연을 이어 왔고 음반 녹음도 한 적이 있지만 함께 무대에 오르는 건 이번 공연이 처음이라고 한다. 알라냐의 전 부인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더 친해 그와는 한동안 어색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며 “친구 커플이 헤어졌을 때는 자기 포지션을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고 장난스레 웃자 완벽함 뒤에 숨겨진 인간 조수미의 모습이 엿보였다.
‘디보’ 적임자를 찾기 위해 오랜 친구인 알라냐에게 공연을 직접 제안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호흡도 맞췄다는 조수미는 프로그램 선곡 역시 각별히 공을 들였다. “아름다운 도전이 좌우명”이라는 조수미의 말을 증명하듯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도 새로움에 대한 찬사가 녹아들어 있다. 최고 난도로 알려진 ‘콜로라투라’와 오페라 마농 레스코 중 ‘웃음의 아리아’, 알렉산드르 알라비예프의 ‘나이팅게일’ 등은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곡들. 특히 듀엣곡의 경우에는 알라냐와 처음 부르는 게 대부분이라며 “음악적으로 수준이 높은 레퍼토리로 꾸렸다. 인간 목소리의 향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께 멋진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 조수미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검색어는 2001년 TV 드라마 명성황후 OST ‘나 가거든’, 2002년 월드컵 응원곡 ‘챔피언’ 등 클래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곡들이다. 클래식계에서의 독보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조수미의 시선은 그 너머의 ‘도전’에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클래식만 바라보며 온갖 고생과 희생으로 음악적인 레벨을 높여 오던 중에 그걸 어느 정도 내려놔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명성보다 관객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털어놨다. “저는 지금까지 세상과 타협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 타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일을 만들어 왔어요. 저는 자신이 뭘 원하고 뭘 할 수 있을지를 잘 아는 사람이에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최근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작 ‘로로’(Loro·그들)에도 출연하는 등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예술 장르를 넘어, 다양한 사회공헌 분야까지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장애인 활동 지원과 동물 보호에 유네스코 평화 대사 활동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가슴 뛰지 않는 날이 오면 언제든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가 돼 있다”는 조수미다. 그는 최근 국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거나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제2의 수미’로 불리는 소프라노 황수미(32)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로 주목받는 등 신예 한국 성악가의 해외 진출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 무대에 우뚝 선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생각보다 따끔한 조언이 돌아왔다. “성공하는 사람들한테는 지름길이 없어요. 겪을 거 다 겪고 흘릴 눈물 다 흘리지 않고는 정상에 오를 수 없고, 올랐다 하더라도 금방 내려와요. 더불어 누구나 1인자가 될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자기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게 성공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걸 같이 바라볼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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