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200’ 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이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인용한 대로 ‘K팝 앨범 최초로 미국 차트를 석권한’ 것이다. 또, 이 차트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정상을 차지한 건 2006년 팝페라 그룹 일디보의 ‘앙코라’ 이후 12년 만의 일로 평가된다. 프랑스 AFP, 영국의 BBC 같은 외신들도 일제히 BTS가 거둔 성과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세계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춤, 꿈과 열정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며 노래를 사랑하는 일곱 소년과 소년들의 날개 ‘아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축전을 보냈다.

물론 이런 전조는 이미 지난 20일 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고 그 무대에서 신곡 ‘페이크 러브(Fake Love)’를 불렀을 때 예고된 일이었다. 빌보드 뮤직어워즈의 사회를 맡았던 캘리 클락슨이 BTS를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이 밴드”라고 소개했고, BTS는 그 소개가 허명이 아님을 완벽한 무대와 열광적인 관객의 반응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러니 BTS의 이번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이어 조심스럽게 ‘핫 100’ 차트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아지는 건 예정된 결과처럼 보인다.

이 정도면 BTS가 가진 음악적 성취와 또 그것을 통해 팝의 본고장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자랑스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그것만큼 더 중요한 건 BTS의 성과가 말해주는 글로벌 음악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다. 과연 BTS의 음악은 어떻게 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정상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우리말 가사로 된 곡으로.

그 변화는 이번 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데스파시토(Despacito)’라는 곡을 스페인어로 불러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던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루이스 폰시가 그 중요한 사례다. 한때 빌보드 차트는 미국 팝 아티스트들의 전유 무대였고, 심지어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가 진입해도 화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페인어로 부르든 한국어로 부르든 노래가 좋으면 비영어권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질 정도로 글로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부른 노래지만, 쿠바 출신 미국인인 카밀라 카베요가 부른 ‘하바나(Havana)’가 큰 인기를 얻은 후, 스페인어 버전이 나온 것 역시 빌보드로 대변되는 글로벌 음악 시장이 이제는 국적이나 언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어찌 보면 음악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른바 ‘글로벌 음악의 시대’가 열리게 된 건, 사회관계망(SNS) 같은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지구촌화’와 무관하지 않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장벽은 이미 SNS로 허물어진 지 오래다. 따라서 국적을 뛰어넘는 ‘글로벌 감성’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고 있으며, 음악은 이 ‘지구촌화’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글로벌 감성’을 연결해주는 효과적인 소통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BTS의 성과를 이들의 남다른 음악적 성취로만 읽어낸다면 자칫 K팝의 이례적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보다는, 이제 누구나 좋은 음악으로 빌보드 차트에 오를 수 있는 글로벌 음악의 시대가 열린 신호탄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BTS가 낸 그 길을 따라 제2의 BTS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열린 글로벌 감성 시대에 K팝 또한 동참해야 하는 음악적 소통의 새로운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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