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철저하게 파헤쳐 사법 적폐를 청산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던 사법부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보고서가 나오자 문제의 해결은커녕 더 큰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특별조사단은 세 번에 걸친 조사에서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3차 보고서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해 특정 재판을 청와대와 협상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이렇게 사법행정권의 남용 문제가 제기되면서 법원 안팎에서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별조사단은 14개월 동안 세 차례 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가 있지만, 관련자들의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검찰에 고발하는 것까지 고려하겠다고 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를 판단해 적절한 조치를 결정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이번 조사 결과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있었다고 한다면 관련자들을 고발하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고민하는 사법부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법원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자 자체적으로 특별조사단을 설치해 사법행정권 남용 여부를 조사했다.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세 차례에 걸쳐 나왔음에도, 이에 대해 법원조차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 번에 걸쳐 조사한 결과가 부실하거나 신뢰할 수 없다면 애초에 조사단을 새롭게 꾸며 재조사를 하거나 차제에 수사를 의뢰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수사 의뢰나 고발 조치를 하겠다니 불신은 더 커지는 것이다.
이 사태와 관련해 이미 법원노조는 관련자들을 고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비롯한 여러 단체도 이 사태를 법원의 사법 농단이라 규정짓고, 조사 보고서에 언급된 재판 결과에 불복하면서 재심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조사 보고서에는 판결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물론 조사단이 조사한다고 해도 재판의 내용을 조사해 개입 여부를 밝히긴 어렵다. 그리고 이미 판결이 난 재판 자체를 조사하는 것은 재판에 사후 개입하는 것으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단도 사법행정권의 남용 여부만 조사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조사 보고서에 언급된 재판들에 대한 불신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재판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수사가 필요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형사처벌해야 한다. 법관이나 법원 공무원이라고 해도 법을 위반했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쳐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다면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단지 추측만으로 재판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요구는 오히려 재판의 독립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어떤 재판도 그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의 기본법인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 중 사법권을 법원에 맡기면서, 헌법과 법률, 그리고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할 것을 법관에게 요구하고 있다. 법원과 법관의 독립은 내·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법의 잣대로만 재판할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헌법이 법원과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것이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은 결코 정치적이어선 안 되며 여론의 향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도 안 된다.
재판의 독립은 헌법이 요구하는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보장돼야 한다. 법관이 정치나 여론에 휘둘리게 된다면 그 재판은 더 이상 사법재판이 아니다. 재판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런 상황일수록 사법부는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도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개혁을 하든 검찰에 고발해 처리하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요구가 지나치면, 그 과도한 요구는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사법부 독립을 부정하고 법적 불신을 초래하면서 법치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