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코다’

“익사한 피아노 송장을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한 일본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한 말이다. 그는 이 피아노에서 “밝은 듯 슬픈 듯 기이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 음악 작업으로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골든글로브, 그래미 등을 석권한 사카모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코다’(감독 스티븐 쉬블·사진)에는 그의 소리에 대한 소박한 ‘집착’이 담겨 있다. 또 원전 사고 피해자들을 치유하기 위한 음악회를 열고, 원전 재가동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알고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그의 사회 참여 방식도 소개한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이 다큐는 인후암 판정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사카모토가 평소 존경하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으로부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음악 작업을 의뢰받고 다시 소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담하게 펼쳐냈다. 암 진단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 그는 20대에 데뷔한 후 처음으로 일하지 않고 쉬며 “살 수 있는 날들을 잃는 건 아까우니까” 재발을 막는 치료는 받되, “언제 죽더라도 후회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 더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을 다시 시작한다.

‘인간극장’ 성격의 이 다큐는 극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사카모토가 작곡한 음악을 영화 장면과 함께 보여주며 여러 감독과 작업하며 겪은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준다. 그는 배우로 출연한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서 감독에게 요구해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맡았다. 또 ‘마지막 황제’에 출연하며 한 장면의 음악을 맡은 후 일주일간 45곡을 작곡하게 된 과정도 소개한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마지막 사랑’에 삽입될 음악 녹음 직전에 인트로 곡의 수정을 요구한 일화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사카모토가 “오케스트라 40명을 불러놓고 지금 고치는 건 무리”라고 말하자 베르톨루치 감독은 “엔니오 모리코네는 바로 해주던데”라고 했고, 사카모토는 “어쩔 수 없이 고쳐서 녹음했다”고 전한다.

그가 새로운 소리를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숲 한가운데 폐허가 된 집 앞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두드려보고, 북극으로 가 빙하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녹음한다. 또 빗방울이 물체에 부딪치는 소리도 들으려 하다가 잘 들리지 않자 직접 양동이를 얼굴에 쓰고 빗속으로 나서기도 한다.

사카모토가 8년 만에 정규앨범 ‘async’를 발표한 지난해 모습까지 담긴 이 다큐의 말미에 쇠약해진 그의 모습이 나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전체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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