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의, 단잠, 31㎝×91㎝, 해남석에 채각, 2011
박충의, 단잠, 31㎝×91㎝, 해남석에 채각, 2011
잠의 신 히프노스가 연꽃 방향을 흩뿌리고 가나 보다.

한낮의 햇살을 머금어 짙어질 대로 짙어졌다가, 저물녘 바람을 타고 뿜어나오는 향기는 그 자체가 최면제다. 하지만 향기로 치자면 더 매혹적인 향기가 있으니, 유유자적하는 화면 속 저 사내를 취하게 한 그것, 바로 흙이다.

흙더미 위에서 한뎃잠을 잔다는 것이 그리 흔한 설정은 아니다. 대지와 함께해온 강인한 삶의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단잠이다. 시름도 잊은 무욕의 인물엔 음각의 실루엣처럼 색이 없다. 거기에 자기의 색을 칠하면 칠하는 대로 자기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같은 형상이어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돌판에 새기는 것은 좀 다른 데가 있다. 작업하는 순간의 근력과 뇌파가 다르다는 것은 경험의 깊이나 무게가 다름을 의미한다. 게다가 오랜 선사 암각화 장인들과의 동행은 더더욱 뜻깊은 일이리라.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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