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은 1898년 6월 2일 한성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그 시신이 광희문 밖에 버려졌다. 동학교도들이 관군의 눈을 피해 송파에 임시 매장한 뒤 2년이 지나 경기 여주 천덕산에 안장했다. 지난 2일 해월의 묘소에서 120주기 참례식이 열리고 있다.
해월은 1898년 6월 2일 한성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그 시신이 광희문 밖에 버려졌다. 동학교도들이 관군의 눈을 피해 송파에 임시 매장한 뒤 2년이 지나 경기 여주 천덕산에 안장했다. 지난 2일 해월의 묘소에서 120주기 참례식이 열리고 있다.

- 천도교 2대 교조 최시형 ‘殉道 120주년’

이정희 교령 등 200여명 모여
천덕산 묘소에서 참례식 열어

전국 200곳 떠돌며 풍찬노숙
사상 체계화·천도교 외연넓혀

비폭력·여성존중 앞서서 실천
경주 황오리 생가터 복원예정


“모든 사람이 하늘같이 존엄한 존재라는 인내천(人乃天)은 근원적 평등주의를 내세운 세계사적 사상입니다. 수운(水雲·최제우)이 동학을 창조한 아버지라면, 해월(海月·최시형)은 터전을 다진 어머니입니다. 해월 없이 천도교는 없습니다.”

지난 2일은 천도교 2대 교조 해월 최시형(1827∼1898·작은 사진)의 순도(殉道) 1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경기 여주 천덕산 중턱 해월의 묘소에는 이정희 교령을 비롯한 천도교인, 해월의 후손, 전국 각지의 동학기행 및 인내천운동연합 회원과 학계·문화예술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례식이 열렸다.

이 교령은 “해월을 추모하는 자리에 근래 이처럼 많이 모이기는 처음”이라며 “물질적 발전을 이뤘지만 정신문명을 극도로 쇠퇴시킨 서구사상의 한계를 절감하고, 해월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는 바람이 불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만 다뤄지던 해월의 사상은 시민들 사이에도 점차 번지고 있다.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해월은 1861년 천도교 1대 교조인 수운을 찾아가 동학에 입도하고, 시천주(侍天主)의 종교체험을 하며 2년 뒤인 1863년 2대 교조가 됐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종교적 천재’였다. 동학란으로 관의 탄압을 받게 된 해월은 체포될 때까지 36년간 전국의 첩첩산중을 숨어 다니는 와중에 동학사상을 체계화하고 실천하며 천도교의 외연을 넓혔다. 기독교와 비교해 수운이 예수라면 해월은 사도 바울이다.

이 교령은 “당시 해월은 전국 200여 곳을 풍찬노숙하며 곳곳에 진리의 씨앗을 심었다”며 “그가 평등주의와 비폭력 사상을 체계화하고 몸소 실천했지만, 우리는 링컨과 간디는 알아도 해월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참례식에 참석한 윤석산(한양대 명예교수) 천도교 전 교서편찬위원장은 “겉보기엔 산속으로 떠돈 중늙은이였지만 해월의 실천적 삶에 감동해 많은 이가 따랐다”며 “종교를 떠나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평생 가르치고 실천한 민중의 지도자로, 오늘날 같은 갈등과 혼돈의 시대에 그의 가르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월은 피신의 일생 중에 교조신원운동과 경전 간행 등 많은 일을 했다. 그중 ‘내수도문·내칙(內修道文·內則)’에서 비참한 여성의 삶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당시, 현재도 진보적으로 해석되는 여성존중 사상을 설파했다.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도 하느님처럼 대하라는 대인접물(待人接物) 사상은 바로 현대의 생명사상이다. 그중 유교 사회의 제사를 뒤바꾼 향아설위(向我設位)는 현대 종교학에서도 그 압도적 깊이에 주목한다.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은 “제사를 받들 때 벽을 향해 신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는,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내용”이라며 “제법(祭法)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저마다 내 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후천개벽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해월이 ‘향아설위’를 처음 설한 경기 이천 앵산동에는 ‘향아설위 제례법 반포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해월의 사상은 생명사상과 협동조합 운동으로 현재에도 이어진다. 이런 운동을 강원 원주를 기반으로 전국에 뿌리내리게 한 생명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서예가인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천도교인은 아니었지만 해월의 사상을 복원하고 실천한 인물이다. 해월이 체포된 원주 호저면 고산리 송골마을 ‘원진녀 씨 가옥’의 앞길에는 1990년 무위당이 세운 해월 추모비가 있다.

김용우 ㈔무위당사람들 기획위원장은 “서양사상을 통해 사회변혁을 꿈꾸고 실천했던 장일순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해월 사상을 만나며 사상적 전변을 겪게 된다”며 “그는 동학이 전봉준의 혁명투쟁으로만 이야기돼서는 맞지 않는다며 해월의 생명·평등사상 등 탈근대적 비전을 중시했고, ‘해월의 환생’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해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국 40여 곳 중에는 강원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돌배마을처럼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기념비를 세우고 순례단을 유치하는 지역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치된 곳이 많다. 천도교는 해월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경주 황오리 해월 생가터 등 유적지 복원을 추진하고, 학술대회와 순례 행사도 열 예정이다.

글·사진 =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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