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미·북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관건은 미국이 ‘어떻게’ 북핵(北核)을 폐기시킬 것이며, 북한이 ‘올바른’ 핵 폐기 결단을 내릴 것인지 여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월 13일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로 가져가 직접 폐기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리비아 모델’이 등장했고, ‘선 폐기, 후 보상’을 의미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거세게 반발했고, 미·북 관계가 악화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재추진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모델’이 미국의 대북 비핵화 방식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트럼프 모델에 관한 몇 가지로 추론이 가능하다. 5월 17일 그는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지 않겠다면서도 “우리는 리비아를 초토화하고 무아마르 카다피를 학살했다”고 하여 리비아 모델을 ‘북한 초토화(decimation of North Korea)’로 해석했다. 트럼프 모델의 핵심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에 대해 미국이 국교 정상화, 경제 지원, 평화협정 등을 통해 보상해 줄 수 있으나, 이를 북한이 거부할 경우 군사적 옵션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백악관에서 만난 직후 “한국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더 이상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 “비핵화를 위한 과정(process)에서 필요하다면 2차, 3차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해 한발 물러선 듯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시간표와 이행 방안 등을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일괄타결(big deal)’이 힘들다고 본 것이다. CVID와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큰 틀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며, 이게 가능해지면 워싱턴이든 평양이든 어디서든 다시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하는 단계적 해결 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시기만큼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시작 전까지 2년 이내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대 정부가 시도했던 북핵 ‘동결-검증-폐기-검증’ 방식이 아니라, 즉각 핵 폐기에 착수해 ‘(부분)폐기-검증-(나머지)폐기-검증’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이 역시 단계적 비핵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 비핵화와는 차이가 있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 모델이 국내정치와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탈퇴한 이란 핵 합의 이상의 것을 북한으로부터 얻어내지 않으면 국내정치적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북한이 CVID에 동의해야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아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트럼프 모델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번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 핵에 대한 CVID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CVID 용어 사용은 회피한 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미국 테네시 주 이전 폐기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를 약속하는 것과 같이 CVID인 듯 보이나 CVID가 아닌 (신고와 검증 의지가 모호하고 미·북 상호 핵 감축 주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사품은 곤란하다.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의 윈-윈을 위해 김 위원장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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