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조사팀장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주심의 판정이 번복된 사건이 연출됐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 때문이다. VAR는 말 그대로 ‘비디오심판’(Video Assistant Referee)이다. 지난 16일 열린 프랑스-호주 경기에서 페널티킥 판정 번복으로 승부가 갈려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지만 그간 심판의 잦은 오심으로 월드컵의 권위마저 위협받는 ‘오심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의 8강전에서 손을 써서 골을 넣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르헨티나는 우승컵을 차지했지만, 월드컵 사상 ‘최악의 골’로 선정됐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고의 빅매치였던 독일-잉글랜드 경기에서도 오심 논란이 뜨거웠다. 잉글랜드 프랭크 램퍼드의 슛이 골라인 안쪽에 들어갔다가 튕겨 나왔지만, 심판은 노 골을 선언했고, 잉글랜드는 결국 지고 말았다. 빗발치는 비난을 이기지 못한 제프 블라터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오심에 대해 사과했다.

우리나라 경기에서도 뼈아픈 오심이 있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은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도둑맞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땅을 쳤다. 스위스의 공격에서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올렸지만 주심이 경기를 중단하지 않아 선수들이 판정을 놓고 허둥대는 사이 실점으로 이어졌다. 오심으로 피해를 본 국가에 월드컵은 ‘축제’가 아닌 ‘악몽’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월드컵부터는 치명적인 오심이 사실상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각 경기장에 설치된 37대의 카메라가 오심을 잡아낸다. 골 판독 외에도 페널티킥, 레드카드, 다른 선수에게 잘못 준 카드 등 승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네 가지 상황에 활용된다.

비디오 판독은 이미 육상과 같은 속도 경기는 물론 배구 등 구기 종목에서도 주역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에서는 심판 대신 비디오 판독만으로 인·아웃을 결정했다. 이런 추세라면 인공지능(AI)이 심판을 대체할 날도 머지않았다. 오늘 오후 9시 태극전사들의 16강 진출을 위한 운명의 스웨덴전이 열린다. 승전보와 함께 오심 논란이 없는 ‘클린 월드컵’으로 기록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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