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위안부 할머니들
日상대 승소 ‘관부재판’ 바탕
소송 돕는 여행사 사장 역할
5㎏ 찌우고 부산 사투리 구사
“박력있는 캐릭터 대리만족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기해”
“우리 같은 여배우 잘 써야
한국 영화계가 풍성해지죠”
“여배우를 활용해야 한국영화계가 풍성해지죠.”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파격 변신을 시도한 배우 김희애(사진)는 여배우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충무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만은 없다. 주어진 현실에 맞춰 사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현재 백수 상태다. 우리 같은 배우 안 쓰면 영화는 끝”이라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6년 재판 끝에 일부 승소를 받아낸 일명 ‘관부재판’ 실화를 풀어냈다. 김희애는 할머니들을 돕는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을 맡아 몸무게를 5㎏ 찌웠고, 부산사투리와 일본어 대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문정숙은 잡초 같은 사업가로, 김희애가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와 결이 다른 인물이다. 이 영화에는 김해숙을 비롯해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내공 있는 여배우들이 출연했다.
그는 처음 ‘센’ 연기를 펼친 것에 대해 “생각 없이 무조건 했다”고 밝혔다.
“후회하고 힘들지언정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캐릭터라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죠.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캐릭터가 아니라 박력 있는 인물을 연기하며 같은 여자로서 대리만족도 됐어요. 어떤 일이든 ‘내가 할게’라고 큰소리치며 나서는 문정숙을 보며 ‘인간의 모습이 저래야지 멋진 거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에게 “스크린에서 더 과감해지는 듯하다”는 말을 건네자 “영화라서 그런 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거예요. 여성으로 수동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인생을 개척하며 사회에 맞서는 역할을 주로 해왔어요. 물론 영화에 나서며 드라마보다 더 꼼꼼하고 섬세한 연기를 하게 되죠. 좀 더 세세한 부분까지 힘을 줘서 연기하게 돼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뤘지만 문정숙의 심적 변화에 집중한 작품이라 주연 배우에게 큰 부담이 안겨졌다.
“전체적으로 다 부담됐어요. 사투리와 일본어를 해야 해서 기술적 부담이 가장 컸고요. 저를 가장 옥죈 건 캐릭터의 톤을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할지 헷갈리는 점이었어요. 넘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레벨1부터 10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제 생각 이상으로 내질러야 완성되는 캐릭터니까요.”
특히 후반부 법정 신에서 격렬한 감정 표현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말 힘들었어요. 법정 장면 촬영이 마지막에 잡혀 있어서 그거 끝내면 10년 묵은 체증이 풀릴 것 같았어요. 촬영 끝내고 분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았어요. 30년 넘게 연기하며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에요. 처음 완성본을 볼 때는 제 연기만 눈에 들어왔는데 두 번째 보니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런 느낌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 같아요.”
대학 1학년과 고교 3학년 두 아들을 둔 그는 딸을 키우는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배우에게는 모든 경험이 재산이에요. 나이가 들며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좁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게 돼요. 시대가 많이 변한 거죠. 이제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연기할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 기대가 돼요. 이순재·나문희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어요. 운동 열심히 하며 건강을 잘 지켜야죠.”
연기 인생 35년 차에 접어든 그는 “지금도 선후배들로부터 자극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여전히 쉽지 않아요. 이번에 대선배님들과 연기하며 많이 배웠어요. 나이가 많다고 대접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저래야 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또 작은 배역을 맡은 젊은 배우들도 성실하게 연기에 임하더라고요. 선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남한테 피해 안 주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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