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MDL)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의 후방 철수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비대칭 능력을 갖추기 위해 1만 문이 넘는 포병전력 중 45%를 휴전선 전방지역에 배치해 놓고 있다. 이 중 170㎜ 자주포 600문과 240㎜ 방사포 400문의 파괴·살상 능력은 치명적이다. 수량으로는 북한이 보유한 전체 야포의 10% 미만이지만, 최대 사거리가 50∼70㎞나 돼 수도권을 공격할 수 있고, 이 두 종류의 장거리포 1000문만으로도 시간당 3만 발 이상의 포격이 가능하다. 서울의 3분의 1을 초토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장사정포 전방 배치를 통해 노리는 전략 목표는 무엇인가? 북한이 전면전을 통해 한국을 완전 점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적어도 개전 초기 수 시간, 또는 수일 내에 휴전선 전방지대와 인근 해역 및 상공으로 대규모 군사력을 집중 동원해 한국군의 방어 태세를 무너뜨리거나 정치·경제·사회적 파탄에 가까운 인적·물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장사정포 전력이다. 장사정포 공격을 통해 한국의 효과적인 방어를 방해하고 저항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보유한 수많은 대칭 및 비대칭 전력 중 제1타격 자산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게 바로 장사정포다. 따라서 장사정포를 휴전선 후방으로 철수시킨다는 건 북한이 가하는 치명적인 위협 수단 하나를 줄이는 것이다. 또, 전쟁 초기에 많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앞으로 후속 군사회담에서 실제로 장사정포 후방 철수가 이뤄진다면, 이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의 상징적 조치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 간의 후속 회담을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사안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남북한 간에 포병전력의 후방 철수를 논의할 때, 북한이 장사정포 퇴거(退去) 대가로 주한미군 ‘제210화력여단’ 철수를 요구할 경우 그것을 무작정 받아들여선 안 된다. 제210화력여단은 전방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전력으로, 이른바 한미연합군의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 전략을 상징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한 포병전력의 후방 철수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MDL 기준, 30∼40㎞ 후방 철수는 전방지역 아군의 취약점을 해소하지 못한다. 북한의 포병전력은 한국보다 전진 배치돼 있어 후방 철수하더라도 전방지역 아군을 여전히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전략목표를 타격할 수 없는 거리까지 철수하는 방향으로 논의하는 게 옳다.
셋째, MDL의 4개 군단(1·2·4·5군단)이 보유한 122㎜ 로켓, 포병포탄 등에 장착된 생화학포탄 제거를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이런 치명적인 위협이 존재하는 한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협정 논의는 사실 무의미하다.
남북한 간 재래식 전력의 후방 철수 및 축소에 대한 논의는 북한의 비핵화와 연계해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지 않고 재래식 전력의 후방 철수 및 축소만 한다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한 억제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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