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기사를 쓰는 기자도 우리말글을 바르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신문에 나가는 기사 문장에 오류가 많지 않은 것은 오로지 교열 기자들 덕분이다. 그들이 틀린 대목을 일일이 고쳐주고 있어서다.
새 책 ‘지금 우리말글’(진선북스 발행·사진)의 저자 손진호는 30년 넘게 신문사에서 교열 일을 했다. 그 시간의 공력을 책에 오롯이 담았다. 동아일보에 3년 3개월간 연재했던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의 내용을 새로 깁고 더했다고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하거나 갈무리해두면 좋은 낱말, 헷갈리기 쉬운 표현 등을 다뤄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우리말에 다가설 수 있게 했다. 총 146개 표제어를 바탕으로 우리말글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으며, 낱말의 어원과 변화 과정 등을 꼼꼼히 짚었다. 예를 들어, 갈매기살은 돼지 배 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부위의 살을 이르는데, 소의 같은 부위는 안창살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시에 가로마기살, 가로매기살을 거쳐 갈매기살이 된 것임을 귀띔해준다.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방송이나 영화 등에 나타난 낱말을 인용해 ‘지금 우리말글’의 흐름을 살피기도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를 이르는 말인 삼팔따라지에 대한 설명. “따라지는 처음엔 ‘키가 작은 사람’을 지칭했다. 그러다 ‘노름판에서 가장 작은 끗수인 한 끗을 이르던 말’로, 다시 ‘38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남북 분단이 지속하면서 생긴 언어 이질화 문제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남쪽이 음료 ‘식혜’와 음식 ‘식해’를 구별해 쓰는데, 북쪽은 함께 쓰고 있다는 것이 그 보기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를 정확히 전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고 당대 언중(言衆)의 생생한 말글살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A는 표준어, B는 비표준어이므로 A를 써야 옳다’는 글에서 벗어나자. 지금은 비표준어이지만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낱말을 찾아내 사람들에게 돌려주자. 사투리로 묶여 있거나 사전에 오르지 못했어도 감칠맛 나고, 삶의 향기가 오롯이 배어 있는 낱말들을 사람들에게 알리자.”
‘싹수’의 강원·전남 사투리에 머물러 있는 ‘싸가지’를 별도 표준어로 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유행어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을 살펴보며 ‘까칠하다’의 사전적 의미가 확장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사전이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중이 만든 말이 사전에 오르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믿음을 전하는 서문의 앞 대목은 풍자의 쾌감을 전하기도 한다.
“난 지금도 중국집에만 가면 짬뽕과 짜장면을 놓고 고민하곤 한다. 하지만 언어 현실에선 짜장면의 처지가 훨씬 낫다. 사실 짜장면은 경직된 어문규범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짜장면을 먹는데 우리 사전은 ‘자장면’만 먹으라고 오랫동안 우겼다. 마침내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31일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았다. 한데 짬뽕은 아직도 중국 음식인 ‘초마면(炒碼麵)’으로 고쳐 사용하란다. 사전대로라면 중국집에 가서 ‘초마면 주세요’라고 해야 옳다. 웃기는 짬뽕이다.”
그런데 이 책을 잘 읽어보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 말글을 다듬기 위해 관련 학자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누리꾼’ ‘나들목’ ‘댓글’ 등의 말이 정착한 것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저자는 언중의 말글살이를 존중하면서도 무지와 나태에 의해 오용하는 사례는 과감히 지적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용구처럼 쓰고 있는 ‘~ 것 같다’에 대한 일갈이 그것이다. “심지어 잘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하면 모른다는 건지, 알긴 아는데 확실하지 않다는 뜻인지 헷갈린다.”
책은 146개의 표제어를 ‘가나다’ 순서로 정리해 독자들이 궁금한 말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했다. 각 편의 이야기가 독립돼 있으니 신문 칼럼을 읽는 것처럼 매일 하나씩 새겨도 좋겠다. 우리말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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