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유명인으로 불리거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설다는 알베르토 몬디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주문에 “이렇게요?”를 반복하며 다양한 자세로 환한 미소를 보였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아직도 유명인으로 불리거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설다는 알베르토 몬디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주문에 “이렇게요?”를 반복하며 다양한 자세로 환한 미소를 보였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중국서 지금의 아내 만난 뒤
2007년 한국에 건너와 정착
주류·자동차회사 일하던 중
‘비정상회담’과 운명적 만남
伊 주요언론 인터뷰도 쏟아져

한국 오래 살아도 차별은 느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며 넘겨
한국인이 伊에 가면 더 심할것

최근엔 발달장애 가진 분들과
사회적기업 열고 무보수 근무


휴일에는 연예인 축구단에서 축구를 즐기거나(위쪽 사진부터) 3세 아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알베르토 몬디. 지난 평창올림픽 때는 JTBC ‘비정상회담’ 등에 함께 출연했던 외국인 친구들과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는 등 남다른 한국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알베르토 몬디 SNS 제공
휴일에는 연예인 축구단에서 축구를 즐기거나(위쪽 사진부터) 3세 아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알베르토 몬디. 지난 평창올림픽 때는 JTBC ‘비정상회담’ 등에 함께 출연했던 외국인 친구들과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는 등 남다른 한국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알베르토 몬디 SNS 제공
2014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의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은 방송가 판도를 바꿨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의식 있는 외국인들의 등장은 일종의 ‘컬처 쇼크(culture shock)’였다. 이후 4년, 여전히 외국인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은 많다. 그사이 수많은 외국인 스타가 명멸했다. 그 속에서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34)는 한순간의 인기에 취하지 않고 다양한 매력을 뽐내며 꾸준히 대중과 호흡하고 있는 대표적 방송인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한창인 요즘, 그는 축구 선수 경력을 살려 SBS에서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 친구를 만나러 한국에 왔다가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주류와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잘나가는’ 방송인이 됐다. 지난해 북핵 문제로 한반도가 시끄러울 때 고국인 이탈리아를 포함해 유럽 매체들이 앞다투어 부정적인 기사를 내자 SNS를 통해 ‘근거 없는 기사 쓰지 말라’고 밝히며 주한 이탈리아 대사의 인터뷰까지 이끌어 낸 알베르토. 정말 한국인 다 된 그를 이달 초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났다.


―방송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3년 반 동안 맥주 회사에서 영업을 했는데 그때 술집이나 레스토랑 사장님들과 친해졌어요. 그러다 한남동의 한 커피숍 사장님이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비정상회담’ 작가님이었어요.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와이프도 반대했거든요. 그런데 수준 있는 프로그램이고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1∼2번 찍고 끝날 거라 생각해 시작했는데 그게 4년을 이어온 거예요.”

―한국에는 언제, 왜 오게 됐나요.

“지금의 아내를 중국에서 만났는데 한국으로 돌아간 후 보고 싶어서 2007년 5월에 건너왔어요.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후 배를 타고 속초로 들어왔죠. 아내가 춘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십을 하게 됐고, 강원대에서 학부 때 공부했던 동북아시아 사회경제에 대해 석사과정을 밟게 됐어요. 그렇게 교제하다가 2011년 결혼했어요.”

―한국에서 방송인이 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전혀요. 와이프가 주위 관심을 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남편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 받길 원했어요. 그래서 ‘비정상회담’도 잠깐 출연할 거라 생각하며 욕심 없이 즐기며 했었죠. 아마 인기를 얻으려 했다면 오래 못 했을 거예요. 여전히 주위에서 제 유일한 팬은 장모님뿐이에요. 방송 활동 때문에 회사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작년부터는 깔끔하게 그만두고 방송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도 언제든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도 알베르토가 한국에서 유명인이 된 걸 아나요.

“(웃으며)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이탈리아의 주요 신문들과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평창올림픽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로 한국이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면서 제게도 발언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금방이라도 한국에서 전쟁이 날 것처럼 기사를 쓰는 것이 화가 났어요. 너무 열받아서 페이스북을 통해 이탈리아 매체 일 마티노(Il Matino)에 직접 연락했죠. 그 후 주한 이탈리아 대사님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정확한 상황을 전달할 수 있었어요. 이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하며 이탈리아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을 경험시켜주는 기회를 얻었어요.”

―알베르토가 느끼는 한국의 방송 환경은 어떤가요.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것을 많이 느껴요. 자동차 회사에서 일할 때도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국차가 판매 1위였는데, 이후 일본차를 거쳐서 지금은 독일차가 유행이에요. 한국에서는 유행이 금세 변하는 걸 알고 방송을 시작했어요. 저는 아무래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전문 방송인보다 말을 잘할 수도 없고, 춤을 잘 추거나 웃기지도 않아요. 하지만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 등 함께 방송했던 분들이 정말 잘 챙겨줘서 지금껏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축구에 열광적인 이탈리아 출신인 만큼 한국에서 맞는 월드컵이 남다를 것 같아요. 게다가 축구 선수 출신이잖아요.

“21세까지 축구 선수로 활동했어요. 한국에서는 연예인 축구팀에서 뛰고 있죠. 이번 월드컵 때는 당연히 한국을 응원해야죠. 한국이 빨리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이탈리아가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에 대해) 그럴 줄 알았어요. 탈락할 줄 알았죠. 축구협회가 잘못했어요. 협회 쪽에서 말도 안 되는 감독을 앉히고 문제를 일으켰어요. 이번에 예선 탈락하면서 비판을 받던 협회원들이 날아갔으니, 다음 월드컵 때는 이탈리아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거예요. 이번에는 SBS에서 월드컵 경기 프리뷰 방송도 맡은 만큼 더 열심히 한국을 응원할 거예요.”

―‘나 한국 사람 다 됐구나’ 느낄 때가 있나요.

“그럼요. 한국말을 쓰다 보니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저도 모르게 신기한 거 보면 ‘대박’이라고 하고, 축구 할 때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아이 씨’라고 한국말이 먼저 나오죠.(웃음) 무언가를 검색할 때도 구글이 아니라 네이버를 써요. 당연히 한국어로 검색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으로서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고요.

“맞아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저는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니까요. 한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좋은 추억도, 친구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있어요. 외국인이라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가서 100% 동화되려면 최소한 30년은 걸릴걸요. 중요한 건, 제가 그런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며 아침마다 기분 좋게 일어나는 게 비결이죠.”

―알베르토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되나요.

“(웃으며) 전 성격상 계획대로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 인생을 보더라도 중문과를 나와 경제를 전공했는데 한국에서는 그와 관계없는 방송일을 하고 있잖아요. 최근에 관심을 갖는 일은 있어요. 지난해 11월 친한 사람 3명과 사회적 기업 ‘엘레멘트’를 창립했어요. 천연 비누를 만드는 회사죠. 최대한 화학첨가물을 사용 안 하고 1000시간 숙성시킨 제품이에요. 그리고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이 생산해요. 이 비누를 유통해주는 회사도 노숙자 등 어려운 분들을 채용하는 곳이죠. 저는 월급을 받지 않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죠. 방송일을 못 하게 된다면요? 그것도 걱정하지 않아요. 앞으로 제 삶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인터뷰 = 안진용 기자(문화부) real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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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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