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순 서울대 교수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얼마 전 미국 카네기재단이 20년간의 연구를 통해 놀라운 결과를 내놨다.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막으려면, 100만 ㎾급 대형 원전을 50년간 매일 하나씩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세먼지도 해결하고 양질의 값싼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경제 전문지 ‘포브’는 원전이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자료를 내놨다. 한국이 수출하는 가압경수형 원전은 그중 백미다. 지난 50년간 연 1만 년 분의 방대한 세계 경험을 반영해 멜트다운 사고를 원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원전이 설계 인증에서 가장 까다로운 제4단계를 통과했다고 미국의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가 발표했다. 이제 남은 절차에 따라 내년에는 미국에서 외국 원전으로서는 최초로 설계 인증을 받을 것이 확실해졌다. 프랑스와 일본도 통과하지 못한 높은 고비를 우리가 넘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유럽의 설계 인증도 통과했으므로 이제 우리 원전이 모든 곳에 들어설 수 있는 패스를 거머쥐게 된다.

더욱이 우리 원전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입증된 경제성으로 세계 모든 원전 가운데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동은 물론 구미 선진국과 아시아의 신흥국에서 신규 원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산업의 지각변동으로 기름 한 방울 없는 우리나라가 원자력 두뇌의 덕분에 에너지 수출대국으로 등단할 수 있게 됐다. 이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원자력 인재를 계속 키워야 한다. 그래서 지난 4월 과학의 날에 광화문 세종대왕 상 앞에서 청년들이 나서서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열었을 때 3천명의 참가자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해외 수주가 뜸할 때 수출 체제를 유지하려면 국내 건설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은 과거 세계 원전 산업의 주역이었으나, 스리마일섬(TMI) 사고 후 자국 내 건설을 중단하자 그 흐름이 깨지고 기술진이 흩어져 재기가 불가능하게 됐다.

얼마 전 한국수력원자력㈜의 신임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 수출 노력을 지지하고자 앞으로 원전 수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불과 며칠 후 열린 이사회는 신규 원전 부지를 모두 해제해 버렸다. 국내 수출 주역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해외시장에 빨간 신호를 보내 원전 수출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 사태는 세계 원전 산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국내 원전도 건설해야 수출 체제와 인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 5월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독일 국민에게 각고의 노력을 호소하여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원전 산업이 사라진 독일에서는 답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19일로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1년을 맞았다. 문 대통령의 원전 수출정책으로 활로를 열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50년간 매년 1기씩 수출한다면 건설과 후속 운영비 수입으로 북한의 핵 폐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 해체를 신규 건설로 보완해 유능한 인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원전수출특별법’ 제정도 절실하다. 이로써 국내 원전산업계에 젊은 인재들의 고급 일자리를 만들고 국내외에 분명한 수출 정책을 천명함으로써 에너지 대국으로 등단하고, 나아가 북핵 폐기에 성공할 수 있는 전기(轉機)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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