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레이트 · 에티하드 급성장
UAE정부서 55조원 지원받아
전세계 항공사 잇단 단항·감편
유럽 관련 일자리 8만개 사라져
업계 “국가 기간산업 몰락 우려”
한국 ‘보조금 위법성’ 공략해야
이달 말 열리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간 항공회담에 대해 한국 항공업계가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UAE는 한국·UAE 간 노선에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자국 항공사의 운항 횟수를 늘릴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UAE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는 두 국영 항공사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짧은 기간 동안 글로벌 강자로 급부상했다. 한국 항공사들도 이런 사례가 국내에서도 반복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과 UAE는 지난 5월 초에도 항공회담을 열고 두 나라는 정부 보조금의 위법성에 대해 협의하고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UAE 소속 항공사들이 앞으로 국제 회계 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해 공개한다는데 합의했다. 또 UAE 소속 항공사가 유럽을 경유해 미국으로 운항하는 노선을 동결하기로 했다.
현재 UAE 소속 두 항공사는 각각 한국·UAE 노선에서 주 7편씩 총 14편을 운항 중인 반면 한국에선 대한항공만 주 7편을 운항하고 있는 상태다. UAE, 카타르 등 중동 지역 국가 항공사들이 끊임없이 한국 시장 증편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발 유럽행 수요를 점유하기 위해서다.
중동 항공사들은 현재 막대한 국가 보조금을 바탕으로 국제항공노선을 확장하며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려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현재 에미레이트항공은 2016년 기준으로 국제 여객·화물 수송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3년에 설립된 신생 항공사 에티하드항공도 국제 여객 14위, 국제 화물 수송 13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면 중동 항공사들의 시장 잠식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9년 국제 여객 13위에서 2016년 17위로, 국제 화물 수송 또한 세계 1위에서 4위로 하락했다. 아시아나항공도 국제 여객 28위에서 32위로, 국제화물 14위에서 17위로 떨어졌다.
중동 항공사들의 급성장 주요 원인은 정부 보조금이다. 미국 항공사들이 중심이 돼 수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UAE와 카타르는 지난 10년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국영 항공사에 총 500억 달러(55조 원)의 보조금과 비정상적인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항공협정의 기본은 양국 간 수요를 바탕으로 운항 횟수를 설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동 항공사가 무차별적으로 항공 노선을 증대해 경쟁을 왜곡하자 유럽, 호주, 미국 등의 항공사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자국과 중동, 아시아, 유럽 노선을 잇는 직항 노선을 대폭 줄이고 있다. 유럽 항공사들의 경우 중동과 아시아 노선의 운항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최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행 노선 20개를 단항했고 에어프랑스도 아부다비, 도하, 제다 등 중동 노선에서 모두 철수하는 한편 아시아 노선의 하노이, 프놈펜, 첸나이 등 운항을 중단했다.
이 같은 중동 항공사 공세로 인한 유럽 항공사의 감편 여파로 2000년 이후 유럽연합(EU)에서만 8만 개의 항공산업 일자리가 없어졌다. 호주도 중동 항공사 피해를 비켜나가지 못했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중동 항공사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밀려 로마,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노선을 모두 단항하고 현재 시드니·런던 노선만 남아 지역 항공사로 전락한 상황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워싱턴·두바이 노선을, 델타항공은 애틀랜타·두바이 노선을 최근 없앴다. 미국·인도 간 직항편도 중동 경유편에 수요를 뺏겨 모두 단항하고 뉴욕·델리, 뉴욕·뭄바이 두 개 노선만 남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중동 항공사들의 증편이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으로 인하여 비정상적으로 경쟁을 왜곡하고 있는 중동 항공사가 진출할 경우 경쟁 항공사들은 피해를 이기지 못하고 기존 운항 노선을 정리하거나 신규 노선을 개설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후 중동 항공사들이 원하는 대로 노선을 재편하거나 가격을 올리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보면 소비자 편익이 증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소비자 선택이 제한되고 가격이 인상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또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 산업이 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은 UAE, 카타르 등과의 항공협정 개정 추진을 통해 중동 항공사 증편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령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15년 12월 중동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해당 국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금 금지 규정을 항공협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시장 역시 서서히 중동 항공사들에 잠식당하고 있는 상태다.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UAE 소속 항공사들은 각각 주 7회 운항하고 있고 카타르항공 역시 한국·카타르 노선을 주 8회 단독 운항하고 있다. 주로 직항 수요가 아니라 자국 공항에서 환승해 유럽으로 가는 한국 승객을 유치하고 있다. 중동 항공사들은 주로 이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항공시장에서 급성장해왔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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