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G 시대를 앞두고 미국 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위 통신사 AT&T가 최근 타임워너를 인수·합병(M&A)했다. 타임워너는 영화사 워너브러더스, 잡지사 타임, 24시간 케이블뉴스 CNN, 음반사 EMI를 거느린 대형 콘텐츠 그룹이다. 양사의 합병은 출판·방송·영화·음악 등 가상재화를 통신망으로 공급하는 디지털 제조-유통 단일화의 길을 연다. 우리나라로 치면 KT가 민음사·YTN·CJ E&M·JYP와 하나로 합쳐 복합 언론·엔터테인먼트·통신 회사로 탄생한 격이다. 상상하기 힘든 미디어 수직결합이다. 방송·통신 융합을 뛰어넘는 대격변이다. 후속 M&A도 줄줄이 진행 중이다. 미국 1위 케이블TV 컴캐스트는 21세기폭스 인수 경쟁을 벌이다가 디즈니에 빼앗겼다. 작년에 야후를 집어삼킨 1위 통신사 버라이즌도 방송사 CBS 인수설이 돌고 있다. 왜 공룡들의 살육전이 벌어졌을까.
첫째, 융합 전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다. 5세대 이동통신, 5G는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인프라다. 4세대(LTE)보다 속도도 100배 빠르지만, 무엇보다 망 쪼개기(Slicing) 기술로 100만 대의 실시간 동시접속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 홈스피커가 냉장고, 세탁기 등 집 안 가전과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사물인터넷(IoT)에 꼭 필요한 기반이 5G다. 자율주행차, 로봇, 스마트시티의 통신망이다. IoT와 AI가 판치는 4차 산업혁명에 돌입하면 게임의 판도가 바뀐다. 지상파·케이블·인터넷의 칸막이는 사라진다. 망(網·Network)은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파든 통신이든, 사실 텅 빈 파이프에 불과하다. 속 내용물이 중요하다. 콘텐츠 없는 통신사를 ‘바보 파이프(Dump Pipe)’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망에 오락 데이터를 넣으면 엔터테인먼트 회사, 뉴스를 얹으면 언론사, 거래 데이터를 실으면 쇼핑몰 혹은 은행이 된다. 고급 데이터인 콘텐츠에 혈안이 될 수밖에. 둘째, 신흥 미디어를 겨냥한 전통 미디어의 반격이다. 인터넷 기반의 넷플릭스,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은 미디어 산업에 진출해 거침없이 성장해왔다. 이들은 그동안 데이터를 통신사 파이프에 손쉽게 흘려보냈지만, 망 중립성 폐지로 사용료가 올라갈 전망이다.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망 사업자의 역습이다.
눈을 돌려 국내를 보자. 방송통신회사가 M&A를 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3개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첫째, 국내 1위 통신사 SK텔레콤은 2016년 국내 1위 케이블TV CJ헬로비전 M&A를 시도했다가 공정거래위 불허 결정으로 무산됐다. 고사 직전인 케이블TV 업계의 자율 구조조정 길마저 막혀버렸다. 둘째, 오는 27일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3년 만에 다시 일몰을 맞는다. 케이블TV, 인터넷(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사업자의 가입자 합이 전체 가입자의 33%를 넘지 못하게 한 세계 유일의 규제다. 또 재연장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방송통신의 공공성을 내세우며 흘러간 규제에 매달릴 때 넷플릭스는 9 대 1의 수익배분 강요로 국내 시장을 유린하고 있다. 미국 공룡전쟁이 끝나면 제2, 제3의 넷플릭스도 들이닥칠 것이다. 5G 미디어혁명 속에 우리 방·통 융합만 1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no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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