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들의 JP에 대한 기억
YS 의원제명 유일하게 반대
한·일국교 위해 학생들 설득
“작은 차이보다 큰 목표 중시
정파와 무관하게 소통·상생
보수 살리려면 ‘실용’ 배워야”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끈 ‘보수의 거목’으로 평가받지만, 상황에 따라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도 기꺼이 손을 잡았다. 정적이었던 YS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 시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끝까지 반대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JP의 빈소를 찾은 인사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타협과 양보의 정치로 숱한 역사적 고비를 돌파해 온 JP의 정치역정은 대책 없는 ‘싸움판 정치’에 매몰된 현재의 정치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6·13 지방선거 참패 후 극심한 내분으로 궤멸 위기에 처한 보수 진영에 대해 “JP의 소통과 상생, 실사구시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타협과 양보, JP식 정치의 요체”=JP가 지난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해 YS 집권의 물꼬를 트고, 1997년 DJ와 손을 잡는 ‘DJP 연합’으로 수평적 정권교체에 기여한 것은 두고두고 상반된 평가를 낳았다. 한편에서는 ‘원칙 없는 야합’이라고 비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타협과 양보의 정치’라고 평가했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23일 JP의 빈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JP는) 늘 작은 차이보다 큰 목표를 중시했던 분”이라며 “(JP가 살아 있다면) 보수가 완전히 폐허가 된 이 상태에서 ‘작은 차이는 극복하고 앞으로 큰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라’ 하지 않았겠나 싶다”고 말했다.
JP는 DJP 연합을 통해 이념과 진영보다는 실용과 민생, 실사구시가 중요하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파와 무관하게 소신을 고집하거나 뜻밖의 태도를 견지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고 후배 정치인들은 전했다.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를 지낸 이완구 전 총리는 “사람들이 내각제 문제 때문에 JP가 DJP 연합을 깬 것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라며 “새천년민주당이 DJP 연합을 깼으며, JP는 깰 생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JP는 다른 이념을 가진 정적이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979년 10월 당시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을 시도한 것에 일관되게 반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JP는 당시 “아무리 대통령의 뜻이라 해도 세상에는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5선 의원으로 공화당 상임고문이었던 JP는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을 통틀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JP는 2004년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끝까지 반대했다. 대다수 자민련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JP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당시 자민련 인사들이 전했다.
◇“다른 이념·세대와도 끊임없이 소통”=JP는 자신과 이념이 다른 정치인이나 세력과도 허물없이 조언하고 함께 대화 나누기를 즐겨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화부 장관 시절 (JP를) 총리로 모셨고 최근까지 찾아뵈며 많은 지도를 받았다”며 “지난 2000년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땐 아낌없는 지원을 해줬다”고 술회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1997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동행해 주셨고, 당시 제가 대구에서 (정치활동을) 할 때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며 “우리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긴 어른으로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JP는) 한국 정치사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JP의 상가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상객을 보니 DJ를 모셨던 분들이 첫 수평적 정권교체 때 JP의 역할과 기여를 알고 더 마음을 쓰는 것 같다”고 전했다.
JP는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겼다고 한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가 거셌던 지난 1963년 11월 서울대 토론회에서 JP가 박정희 정권을 ‘민족적 민주주의 정부’라고 규정하며 직접 학생들을 설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원유철 한국당 의원은 “15대 국회 때 초선의원이었던 저를 불러 바둑을 함께 두며 ‘의회가 공정하고 상생하려면 내각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평소 공정과 상생의 정치를 추구했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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